"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시간) 아시아 여성 최초이자 한국 작가 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한강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여덟 살 때 오후 산수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니 다른 아이들과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일을 기억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길 건너편에는 비슷한 건물의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여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그 비에 팔과 다리가 젖는 것을 느끼면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강은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며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읽고 쓰는 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했다"며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깊은 곳으로,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그 실에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강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을 밝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렸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블루 카펫’을 밟진 못 했다.
시상식에서 한강은 약 1500여명의 청중으로부터 힘찬 박수를 받았다.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으로부터 받은 메달은 앞면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학상 증서는 다른 수상자들의 것과 달리 양피지로 제작됐다. 이날 시상식의 유일한 여성 수상자인 한국은 검은색 드레스에 검은색 파우치를 들고 참석했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약 5분간의 연설을 통해 한강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맛손은 제주 4·3사건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고 "한강의 작품은 결코 잊어버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며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부서지기 쉬우며 어떤 면에선 나약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거나 질문을 던질 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맛손은 이어 영어로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고 부르며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맛손은 당초 한국어로 한강을 호명할 예정이었으나,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인해 영어로 바꿔 불렀다.
또한 한강은 연회에서는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했다.
한편, 이날 한강과 함께 물리학상 존 홉필드(91)와 제프리 힌턴(76), 생리의학상 빅터 앰브로스(70)와 게리 러브컨(72), 화학상 존 점퍼(39)와 데미스 허사비스(48), 데이비드 베이커(62)가 메달을 받았다. 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57), 사이먼 존슨(61), 제임스 로빈슨(64)이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