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등을 이유로 이혼을 추진해온 최태원 SK 회장이 배우자에 얼만큼의 재산을 나눠줘야 할지 법원 결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의 배우자는 “SK를 키워줬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어서 이혼으로 노소영 아트나비 관장이 분할해 갈 재산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노소영 관장 선친인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2015년 최 회장이 혼외자의 존재를 고백하고 이혼을 추진하면서 사실상 파경을 맞이했다.
노 관장은 이혼을 거부하다, 2019년부터 소송전에 돌입했다.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가운데 절반 수준인 약 650만주에 대한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이다.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665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가정법원은 SK 주식이 증여·상속 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이고 노 관장 측 재산분할 요구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노소영 관장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재산분할의 형태를 주식에서 현금 2조원으로 변경했다.
또 최 회장의 동거인이자 혼외자의 엄마인 김희영씨에 대해서도 3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놓은 상태다.
이번 소송은 재벌가를 넘어 외도에 따른 한 가정 파경, 즉 ‘가정의 가치’ 문제도 있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재벌의 성장 방식, 또 정경유착 등을 둘러싼 평가의 의미도 가진다. SK그룹 자체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배려로 지금의 굴지의 그룹에 올랐다는 게 세간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SK의 역대 주력 회사는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전까지는 정유와 통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전까지 선경그룹은 방직 회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 1980년말 공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유공)을 인수하면서 에너지‧화학 메이저로 도약했다.
1999년 산업자원부가 역대 장관들의 에세이를 모아 펴낸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서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1994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기록했다.
“각하, 유공을 선경에 넘기셨잖습니까. 그때 왜 선경에 넘기셨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최동규).”
“아, 그거? 그때 유공을 선경(현 SK그룹)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야. 나도 몰랐어(전두환).”
이 인수로 SK는 단숨에 재계 5위로 도약한다. 80년대엔 정경유착이 극심할 때였고, 특히 그 무렵은 신군부의 힘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증언을 토대로 하면 이미 ‘노태우-SK’ 간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태우 입장에서도 훗날 자신의 딸과 SK 가문의 아들이 결혼하게 됐으니 딸의 혼처의 뒤를 봐준 셈이 된다.
노태우는 대통령 당선 및 딸의 결혼 후엔 대놓고 SK를 밀어준다. 오랜 기간 SK그룹의 ‘원투 펀치’ 중 나머지 하나인 이동통신 사업(현 SK텔레콤)이 이 무렵 태동했다.
당시 선경그룹은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동전화 사업을 추진했다. 1990년 선경정보시스템(주)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직후인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선경그룹과 포항제철, 코오롱 등 3사의 치열한 수주전 끝에 선경그룹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사돈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자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대통령이 바뀐 1994년 SK그룹은 민영화된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인수하고 1999년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면서, 국내 제1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됐다.
물론 SK는 ‘최태원-노소영 결혼’(1988년)과 유공 인수 및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시점이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실제 이런 내용은 법적으로 노태우 딸 노소영이 재산분할에서 입증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그러나 노소영 관장 측은 적어도 ‘현금 665억원’은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선친을 떠나 주부의 재산 형성 기여도가 1.2% 수준이라고 법원이 판단한 셈이어서 황당하다는 것이다. 1심 판결 후 노 관장은 "이 판결로 인해 힘들게 가정을 지켜온 많은 분들이 유책 배우자에게 이혼을 당하면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대표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관장은 또 2심 재판에서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 "1990년대 선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 회장 측에 3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인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사위인 최태원 회장에게는 32억원 등 모두 343억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노 관장은 심지어 최종현 선대회장이 돈을 받으면서 건넨 약속어음과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증거는 노 관장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굴지의 재벌로 성장한 SK에서 노씨 가문의 흔적은 ‘343억원’이 전부인 셈이다. 이마저도 법원이 인정할지 미지수다.
노 관장은 지난달 항소심 마지막 심리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비록 잃어버린 시간과 가정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가정의 가치와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회장님은 재판중’ 시리즈 이어집니다.
※②삼성 이재용 후폭풍 ③LG 구광모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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