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는 이미 기본적인 화재 대응 설비와 방재 체제를 갖추고 있다. 우선 자동화 방재시스템과 화재감시 CCTV를 구축해 24시간 모니터링과 관제 업무를 수행한다. 또 평상시 소방을 포함한 시설물 유지보수 전문 인력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고 화재 발생 시나리오를 포함한 위기 대응 매뉴얼을 기반으로 재해 예방 활동과 대피 등 대처 훈련을 하고 있다. 이에 더해 기본 방재 수준을 높이고 화재 발생 상황에 입주 기업과 근무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화 시설, 체계를 고도화한 일부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전국 13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KT클라우드는 데이터센터에 변전소, 내부 전원 계통 이중화와 내진설계를 적용했고 작년엔 무정전 전원장치(UPS) 배터리를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안정적인 납축전지·리튬인산철 배터리로 교체했다.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내부 구조물을 불연성 재료로 시공했고 실내 곳곳에 화재 탐지·소화 설비, 가스 소화기를 배치했다. 정전, 장비 소손, 화재 등 모의 장애 상황에 대비한 복구 훈련과 자위 소방대 화재 대응 모의 훈련을 시행 중이다.
그룹사와 대외 고객사를 위한 데이터센터 4곳을 운영하는 롯데정보통신은 일반 화재감지기에 더해 그 200배 수준 감지 성능을 내는 조기 연기감지기(VESDA)를 구축하고 이를 포함한 전체 소방설비를 정기 점검하고 있다. 화재 발생 시 1차(방재센터)·2차(소방서 연계 자위 소방대) 대응 절차를 운영한다. 화재뿐 아니라 정전·수해·지진·폭우·폭설 등에 대응하는 절차도 훈련하고 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지난 20일 데이터센터 화재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한 보호조치를 점검하고 안정성 확보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국내 데이터센터 사업자 긴급 점검회의'에서 "재난 상황에서도 데이터센터가 중단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전력, 소방 등에 대한 보호조치 기준을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정기적 점검과 대비가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시장을 보다 안전하고 든든하게 하되, 업계와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쳐 실질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제도 개선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는 데이터센터 관련 재난 상황에 디지털 서비스에 의존하는 기업과 개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센터 산업계를 위한 업무연속성계획(BCP)과 대응 매뉴얼 표준안 마련을 추진해 왔다. 채효근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전무는 이 논의를 계기로 과기정통부, 소방청 등 당국이 각 데이터센터에서 자체 수행해 온 재난 대응 훈련이나 방재 설비 점검 주기 등을 정례화하고 훈련·점검 결과 보고와 기준을 지침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고 봤다.
글로벌 업체 에퀴닉스도 업계 전반적인 수준에 맞게 데이터센터에 방재 설비, 매뉴얼을 갖추고 상황별 모의 대응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장혜덕 에퀴닉스코리아 대표는 최근 부각된 데이터센터 업계 BCP 표준화 움직임에 대해 "디지털 핵심 자원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의 회복성, 탄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비되면 좋을 것 같다"며 "같은 목적으로 여러 법령에서 중복으로 요구하는 조치를 줄이고 필요한 조치를 강화하기 위해 논의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가 임차한 판교 데이터센터도 화재 발생 후 이미 마련된 매뉴얼대로 대응이 이뤄졌고 덕분에 더 큰 불이나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불이 난 판교 데이터센터는 자체 발전시설, UPS, 배터리 등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주 전원 계통 문제가 생겼을 때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보조 전원 설비들이 밀집돼 이번 사고처럼 보조 전원 설비 중 한쪽에 불이 난 상황에 취약한 구조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업계가 논의 중인 데이터센터 BCP 표준안에 여러 보조 전원 설비와 배선을 물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에 배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