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규제 일변도가 여전하다. 여야 정치권은 규제로 점철된 한국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규제 해제에 한 목소리를 내왔지만 새로운 규제 법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언행 불일치의 전형을 보였다는 혹평이 나온다.
특히 여당은 지난 21대 총선을 통해 177석을 얻은 뒤 이른바 '악법' 제정에 시동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회기가 1년 5개월여 흐른 15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부터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임대차 3법'까지 규제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제안된 의원발의 규제 법안은 이달 7일 기준 1428건 이른다. 지난 20대 국회와 비교하면 동기간(2016년 5월 30일~2017년 11월 7일) 의원발의된 규제 법안 1869건 대비 441건 줄었지만 국회의 규제 강화 기조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1대 총선 결과 '거여(巨與)'로 자리 잡은 민주당은 정치권의 규제 강화 기조를 더욱 심화시켰다. 대표적으로 민주당은 지난해 5월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기업규제 3법 통과에 주력했고 같은 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끝내 통과시켰다.
3법 중 하나인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가운데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때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합산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 대표소송 제도'도 새로 신설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유지하는 대신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금융그룹감독법안에는 금융사를 2개 이상 운영하며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는 대기업에 속하는 6대 복합 금융회사(삼성·현대차)를 감독 대상으로 지정해 건전성을 관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관련한 재계 우려는 일찌감치 터져 나왔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기업 규제를 풀어 투자를 촉진하기는커녕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법안을 신설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여당은 끝내 법안을 처리했고 직후 재계에서는 깊은 우려와 유감 표명이 이어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30개 경제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과 형법을 중대하게 위배해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는 중대재해법의 제정에 반대한다"며 입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중대재해법 시행 코앞인데...기업 70% "준수 어렵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 부담을 키웠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 등 중대한 재해가 발생하거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도록 규정한 법이다. 더불어 사업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두고도 재계 우려와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포괄적 제재 조항이 꼽혔다. 법안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되는 기업 행위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 기업은 법안 내용이 불분명해 어떻게 대응에 나서야 할지 모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기업 314개사(50인 이상)를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7일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준비 및 애로사항 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기업 66.5%는 '시행령에 규정된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시행일 내 준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법 시행일 내 의무준수를 어려워했는데 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 경우 77.3%가 '준수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법안 이행이 어려운 이유는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47.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준비 기간이 매우 부족하다(31.2%) △안전투자 비용이 과도하게 필요하다(28.0%) △전문성이 부족하다(24.5%) 순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는 '고의·중과실이 없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규정 마련(74.2%)'으로 파악됐다.
경총 관계자는 "이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임대차 3법, 집값 상승에 기름..."연말까지 보완책"
21대 국회가 만들어낸 규제의 정점은 임대차 3법이 찍었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지난해 7월 30일 국회 통과)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지난해 8월 4일 국회 통과)을 가리킨다.
임대차 3법 시행은 문재인 정부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집값과 주거비용이 폭등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KB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법안 시행 1년 후인 지난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년 대비 16.7% 상승했다. 반면 임대차 3법 도입 직전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2.4%에 그친다. 7분의 1이다.
이에 정부는 연말까지 보완책을 마련, 임대차 3법 시행으로 나타난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정권 재창출이 실현될 경우 21대 국회의 부동산 규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최근 대장동 개발 사업 비리를 고리로 부동산 규제 강화에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과이익환수법'으로 통칭되는 개발이익환수법 개정안, 도시개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개발이익환수법 개정안, 도시개발법 개정안과 함께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 처리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3일 열린 첫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당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반드시 국민에게 돌려 드린다는 원칙을 지킬 온갖 제도를 만들고 보강해주길 부탁한다"며 "이것이 당의 대선후보로서 첫 번째로 드리는 당부"라고 강조했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송영길 대표는 "개발이익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내일(4일) 정책 의총(의원총회)을 통해 당론으로 발의해 통과되도록 할 것"이라며 이 후보의 부동산 규제 입법 드라이브에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