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노사 모두 시행령 규정에 대한 각자의 불만을 표현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제정안이 본래의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담지 못하고 적용 범위도 더 협소해졌다고 지적하고, 경영계는 경영자에게 부과되는 책임과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노사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은 '직업성 질병 목록'과 '경영 책임자 의무' 등이다. 먼저 직업성 질병 목록과 관련해 노동계는 중대재해에 해당할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과도하게 좁게 규정했다고 지적한다. 시행령 규정에 대표적인 직업성 질병으로 꼽히는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암 등은 제외되고 급성 중독만 포함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따르면 시행령상 24개 급성 중독성 질병이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는 최근 10년 동안 한 건도 없다.
경영계는 또 중대재해처벌법 상 형사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와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시행령에는 경영 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지만, 구체적인 범위는 명시하지 않았다. 안전관리체계 구축 의무 역시 '적정한' 예산 편성과 '충실한' 업무 수행 등 모호한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경영계는 불명확한 표현은 결국 경영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법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음에도 경영책임자의 범위나 의무사항 등 규정 내용 중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이대로 법이 강행된다며 기업인 대부분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영세한 중소기업의 경우, 코로나19 극복에 온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할 여력이 없다. 처벌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중소기업은 1년, 대기업은 6개월 가량 유예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내 핵심 규제들이 빠져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회피할 여지가 많다고 반박한다.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는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경영책임자를 규정해 실질적인 기업 오너는 처벌에서 제외될 빈틈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내 ‘2인 1조 작업지침’ 등 핵심내용이 제외된 것도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확보 의무를 지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외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문제로 꼽고 있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 사망 사고 비율이 전체 사고의 35%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35%의 산업재해를 방치하겠단 뜻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니 경영책임자 책임·처벌을 강화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법 제정의 취지였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시행령은 법 제정 당시 핵심 대책이 전부 빠져있다”며 “위험한 작업의 경우 ‘2인 1조 편성’을 의무로 한다는 사항은 법이 만들어진 이유와도 같은 핵심 사항이지만 결국 포함되지 않았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와 같은 수많은 산재 사망사고가 인력 부족으로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에 노동자가 내몰리면서 발생한 사례다. 이대로 법이 실행된다면 결국 현장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초 제정돼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