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속 성장을 이룬 업체들이 거금을 들여가며 해외 기업을 손에 넣을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는 중국 가전시장 경기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 년 간 가전 M&A 시장에서 중국 업체를 찾아보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 가전업체의 ‘M&A 황금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中 '가전공룡' 3인방, 2010년부터 8년 간 가전업체 M&A 시장 '큰손'
최근 중국 대표 가전 업체인 메이디(美的·Midea)가 중국 엘리베이터 업체 링왕엘리베이터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업계 이목이 집중됐다. 가전 업계에서 매우 오랜만에 나온 인수합병 소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지난 2010년부터 약 8년간 글로벌 M&A 시장의 ‘큰손’이었다.
특히 메이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왕성한 먹성을 자랑했다. 중국 온라인매체 제몐에 따르면 메이디는 지난 2010년 자회사를 통해 이집트의 에어컨업체인 미라코(MIRACO) 인수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M&A 행보에 나섰다. 이듬해 메이디는 글로벌 에어컨 업체 캐리어(Carrier)의 라틴아메리카 사업 지분 51%를 인수했다. 2016년에만 무려 3차례의 M&A를 성사시켰다. 구체적으로 일본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 지분 80.01%와 독일 대표 로봇 업체 쿠카(Kuka)의 지분 25.1%, 이탈리아 에어컨 제조업체 클레빗(Clive) 지분 80%를 차례로 집어삼켰다.
세 회사를 단숨에 삼킨 메이디는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곧바로 2017년 2월 이스라엘의 로봇 솔루션 업체 서보토닉스를 사들였다.
또 다른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얼(海尔·Haier)의 해외기업 쇼핑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하이얼은 2011년 일본 산요의 가전사업부 인수를 시작으로 2016년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 부문, 2018년 이탈리아의 가전기업 캔디(Candy) 지분을 잇따라 인수하며 적극적인 M&A행보를 보였다.
하이센스(海信·Hisense)도 마찬가지다. 하이센스는 2012년 미국 레이저 칩 제조회사 두 곳을 인수한 후 2015, 2017년 각각 일본 가전 업체 샤프의 멕시코 공장과 도시바의 TV사업부 등의 지분을 잇달아 구매했다. 2018년에는 슬로베니아 가전 대기업 고레니아의 지분을 95%로 확대했다.
◆ "향후 2~3년간 중국 가전 업체들의 해외기업 인수 행진은 볼 수 없을 것"
해외기업 '싹쓸이' 쇼핑에 나섰던 주요 중국 가전업체들이 글로벌 M&A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건 지난 2019년부터다. 제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중국 가전 업체들의 M&A 규모는 총 1397억 위안이다. 이는 2016년 6817억 위안의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게다가 해외 인수합병 건수는 ‘제로(0)’다.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이 이미 세계 선진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에 M&A가 급감했다고 분석한다. 더 이상 중국 업체들이 해외기업의 우수한 제조기술을 가져올 필요가 없어졌단 것이다.
중국 스마트산업 관련 전문 온라인 매체인 즈둥시(智東西)는 중국 내수 시장의 환경 변화도 M&A 감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즈둥시는 “중국 가전 산업은 내수 부족으로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으며 인공지능(AI)·5G·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신기술을 도입한 가전 산업이 떠오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중국 가전 업체들로선 해외기업을 인수해 브랜드를 강화하고 시장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이미 획득한 기술과 자원을 활용해 혁신적인 개발을 이끄는 것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즈둥시는 “이에 따라 향후 2~3년간 중국 가전 업체들의 해외기업 인수 행진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