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금융권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풍부한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생산적인 투자처를 만들어주는 정책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데도 돈줄이 막혀 있다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정부 역시 이와 유사한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달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시장의 회복세가 지속되는데 실물경제는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간 괴리의 간극을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괴리가 경제회복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말 평균잔액 기준 광의통화량(M2)이 3054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중 통화량을 의미하는 M2는 지난 4월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막대한 유동성은 은행과 대기업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부동자금으로 흘러갔다. 5월 말 기준 시중 부동자금은 1145조원을 기록해 지난해 12월 말 1046조원 대비 99조원이나 늘어났다.
물론 대폭 늘어난 유동성 중 일부는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흘러가기도 했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 대출은 각각 48조6000억원과 17조원 늘었다. 그러나 이들에 집행된 대출은 시중 부동자금보다도 적은 규모다.
결국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으로 어느 때보다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은행 문턱이 필요한 만큼 낮아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이 전국 451개 기업체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2.8%의 기업이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응답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원인에 대해서는 '담보여력이 줄어 대출이 줄었다(25.8%)'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매출 축소를 이유로 대출한도가 줄었다(24.2%)'는 답변도 이에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대출금리가 상승하거나 대출기간 조건이 악화됐다는 응답도 각각 7.6%로 적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기업이 은행 등 금융기관의 태도 변화 탓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유동성을 은행이 중간에서 꽉 움켜쥐고 중소기업·자영업자에게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금융시장은 위험이 크지 않는데 실물경제에서 위험신호가 커지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