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수신이 1858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8조7000억원이나 급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은행 수신 상승세가 가파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들어 1~6월 은행의 기업·자영업자 대출은 모두 77조7000억원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도 40조6000억원이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 중 가계·기업 대출이 118조3000억원 늘어난 상황에서 은행 수신이 108조7000억원가량 증가한 모습이다.
낮은 금리 속에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출을 급속히 늘렸어도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고 예금으로 자금을 쟁여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급증한 은행 수신 108조7000억원 가운데 107조6000억원이 수시입출식 예금이다. 대출을 받아 현금을 확보한 뒤 잠시 은행에 맡긴 상태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3차 추경 주요사업을 3개월 내 75% 이상 집행해 경기회복을 뒷받침한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소비를 위한 마중물을 신속히 시장에 투입한다는 얘기다.
대출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여파로 운영이 어려운 소상공인에게 올해 상반기에 지원한 자금이 재투자나 소비보다는 금융상품 투자로 이어졌다는 얘기도 끊이질 않는다.
직접 소비를 하지 않더라도 재투자를 통해 관련 업계가 수익 활동에 힘을 얻도록 한 정책의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정부의 재정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비난도 함께 들린다. 당장 경기 부양 정책으로 시중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더라도 자금이 시장을 키우고 활성화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정부 정책이 다소 미흡했다는 평도 들린다.
부동산, 주식 등 다양한 투자처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운 정부를 탓하는 시선도 포착된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과 함께 시장 상황과 엇박자를 보이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한 자산가는 "장기적으로 자금을 묶어두기보다는 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잠시 현금을 갖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귀띔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실물경제가 바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주식이나 부동산, 심지어 정크펀드(위험 자산)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분위기"라며 "경제의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금이 계속 풀린다고 한들 직접적인 경기 부양이 되지 않아 자금이 예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