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북한 이슈...공평한 방위비 강공 예고
이날 연설에선 북한 이슈가 자취를 감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두루 언급했지만 북한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대북 이슈에 각별히 공을 들여온 만큼 이날 연설에서도 어떤 식으로건 짚고 넘어갈 것이라던 주요 외신의 예상도 빗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한 얘기를 꺼내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엔 북한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면서 최대 압박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고, 지난해에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로 2차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전격 발표했다.
다만 국정운영 청사진을 소개하는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언급되지 않은 만큼 대북 이슈가 뒤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서도 당분간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공평한 방위비 압박을 통해 성과를 욕심내는 모습이었다. 그는 "우리는 마침내 동맹국들이 그들의 공평한 몫을 지불하도록 돕고 있다"며 "다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로부터 4000억 달러 이상의 분담금을 걷었고 최소한의 의무를 충족시키는 동맹국의 수는 2배 넘게 늘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을 따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미국은 계속해서 공평한 부담 분담을 요구하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한·미 양국은 제11차 방위비분담금 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악수 거절한 트럼프 vs 연설문 찢은 펠로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하원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으로서 상원의 탄핵심판을 하루 앞둔 날 이뤄졌다. 상원의 '무죄판결'이 기정사실화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약 80분간 이어진 이날 연설에서 탄핵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취임 후 규제 감축, 대대적인 감세, 무역협정 개정과 그에 따른 경제 성과를 부각시키면서 재선 행보를 가속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탄핵정국에서 한층 깊어진 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불화는 또렷하게 목격됐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연설문을 건네받은 뒤 악수를 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의 손을 잡지 않고 무시하듯 뒤돌아섰다.
여기에 응수해 펠로시 의장은 의회에서 대통령을 소개할 때 쓰는 "크나큰 특권이자 영광(high privilege and distinct honor)"이라는 표현을 생략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뒤엔 연설문을 손으로 박박 찢는 장면도 포착됐다.
또 워싱턴 정가의 극명한 분열상을 드러내듯 트럼프 대통령 연설이 이어지는 내내 공화당에선 기립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침묵하거나 때때로 야유를 보냈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다수의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흰색 옷을 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흰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을 상징한다. 여성의원들은 취임 전부터 여성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정연설 때 흰옷을 입고 있다.
◆"위대한 미국의 귀환"...취임 후 성과 자화자찬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사실상 재선을 염두에 둔 성과 홍보장이었다. "3년 전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귀환'을 시작했다"며 "오늘 나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여러분 앞에 섰다"고 말문을 연 그는 "일자리가 부흥하고, 소득이 급증하고, 빈곤이 급감하고 있다. 범죄는 떨어지고, 자신감은 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번영하고 다시 크게 존경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며 규제 감축, 감세, 무역협정 개정 등을 성과로 내세웠다. 그 결과 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고, 실업률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중산층의 삶이 개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미·중 1단계 무역합의 등을 불공정 무역관행을 개선한 사례로 소개했다.
한편 의약품 비용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저렴한 의료보험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제시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 공약인 '메디케어 포 올'을 겨냥한 듯 "사회주의가 미국의 의료보험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 남부 국경의 안전을 위해 전례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반이민 정책을 성과로 제시하고 의회의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올해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국정연설에서 자신의 성과를 나열함으로써 사실상 재선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하루 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미·중 1단계 무역협정, 대이란 강경책 등에 힘입어 취임 후 최고치인 49%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