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암전 상태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과 오너일가 경영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중형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재판정에서 이를 들은 신 회장과 임직원들은 롯데그룹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개를 떨군 채 마른 침을 수차례 삼켰다.
검찰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 회장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14년과 벌금 1000억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의 이번 구형량은 1심에서 각각 심리해 선고했던 사건을 합친 것과 동일하다.
검찰은 “신 회장은 롯데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위치에서 부당급여 지급 등을 중단시킬 권한과 책임이 있음에도 범행이 계속될 수 있도록 했다”며 “재벌을 위한 형사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납득이 어려운 경(輕)한 형을 받는 결과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측은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과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금, 부당 급여 지급 등 모두를 ‘사건 발생 구조’로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로 검찰에 맞불을 놨다.
신 회장의 변호인은 “해당 사건들 모두 신동빈 회장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는 전 대통령, 하나는 아버지가 딸들 생활지원을 위해 만든 구조다. 대통령도 권력자지만 아버지도 피고인에게는 권력자였다. 단순히 요구에 응한 행위가 향후 이 같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지 어떻게 알았겠나”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정부의 기업에 대한 공공사업 지원 요청이나 기업의 사회적 환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단순히 국정농단 하나로 유·무죄를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기업들이 정부 요청에 따라 여러 공익적 사업을 지원하는 경우에 어떤 건 제3자 뇌물 공여로 처벌하고, 안 하는지 기준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부재로 6개월째 총수 공백 상태를 이어가면서, 올 하반기 일자리 창출은 물론 주요 투자건에 대한 대한 의사결정이 원활하지 않다.
주요 의사 결정이 사실상 ‘올스톱’ 되면서 롯데의 성장 동력이던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해외투자 등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롯데그룹은 최근 10년 동안 한 해 5조∼10조원 투자하고 한 해 평균 1만5000명가량을 채용해 왔지만 현재까지 투자와 채용 계획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지주사 체제 전환도 더디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설립했으나, 2년 내 정리해야 하는 금융계열사 지분 처분작업은 아예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최종 의사결정자인 신 회장의 직접 결정이 없어 차질이 불가피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재판부의 선고가 남아있으므로 아직 입장을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 “향후 재판을 지켜보겠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신 회장의 국정농단 사건과 오너일가 경영비리 사건을 따로 다뤘지만, 2심에서는 병합해 심리했다. 신 회장은 경영비리 건은 상당부분 무죄를 인정받아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은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항소심 선고는 신 회장의 구속기한 만료 전인 10월 초에 있을 전망이다.
한편 이날 검찰은 신격호 명예회장에겐 징역 10년, 신동주 전 SDJ코퍼레이션 회장에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개인 비리 사건을 병합해 재판을 받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겐 징역 10년과 벌금 2200억원을, 신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에게는 징역 7년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