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나와 달리 그는 귀가 쫑긋하게 세워진 작은 고양이를 마치 외계인 보듯 했다.
남편이 용기 내어 내미는 손을 제이가 사정없이 발톱으로 찍어 오르는 통에 둘의 마음의 거리가 조금 멀어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혼 후 고양이와 살게 된 지도 벌써 4년차. 최근에 남편이 자꾸 메시지로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보호소나 임보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각종 고양이들의 사진…….
남편의 제안으로 맞아들인 우리집 셋째. |
세상에 어쩜 이렇게 예쁜 고양이가 많은지 모르겠다는 우리 집 남집사가 갑자기 셋째를 입양하자는 제안을 내게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내가 그의 설레발을 말렸다.
한 마리에서 두 마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두 마리에서 세 마리가 되는 것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우리 두 사람이 키울 수 있는 고양이는 두 마리면 충분했다. 혹시 지진이라도 나면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들고 달려야 할 거 아니야(?).
남편은 의외로 나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시무룩했지만, 그새 마음에 점찍어둔 아이가 있는지 그 후로도 집요하게 나를 졸랐다.
애초에 그의 세계에 고양이를 반강제로 들이민 것은 분명히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입장이 바뀌게 된 거지?
세 마리가 동시에 아프면 어떡할 거냐는 최악의 가정에 ‘내 용돈 줄여서 보탤게’라고까지 대답하는 그에게 나도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제일 중요한 건 어쨌든 한 생명을 충분히 잘,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우리의 단단한 결심이니까.
한편으로는 예전부터 셋째를 들인다면 예쁜 아기 품종묘를 키우고 싶다던 남편이 실제로는 보호소에서 입양할 생각을 한 것이 기특하기도 했다.
일단은 보호소에서 눈여겨본 아이를 실제로 만나본 뒤에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려 보호소 앞에 도착하니 먼저 강아지들이 짖기 시작했다.
이 추운 날에도 사람을 보고 다가오며 무릎 위로 뛰어오르는 강아지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미안했다. 견사를 지나 묘사로 들어가니 사진으로만 봤던 크림색 코숏 고양이가 의자 밑으로 숨었다.
모색 때문에 붙은 이름이 분명한 ‘크림이’는 어릴 때 구조되어 벌써 몇 년 동안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격리중이지만 얼마 뒤 첫째, 둘째와 합사하게 되리라. |
예쁜 얼굴이라기보다는 조금 억울해 보이고 퉁명스러운 얼굴, 구내염으로 발치하여 몇 개 남지 않은 이빨, 살이 찐 건지 털이 찐 건지 모를 덩치의 크림이는 우리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의자 밑에서 살금 눈을 감고 잠이나 잘 태세였다.
하지만 크림이는 몇 년 동안 봉사자들이 오면 제일 먼저 문 앞으로 달려 나와 반겨주고, 빗질을 하든 발톱을 깎든 싫은 소리 한 번 않고 몸을 맡기는 순둥이라고 했다.
우리가 낯선 탓인지 이날은 좀처럼 의자 밑에서 나와 주지 않아 별다른 교감 없이 얼굴만 슬쩍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소득 없는 만남이었던 것 같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 그 크림색 고양이의 시큰둥한 얼굴이 눈에 밟혔다.
'어때, 우리 그 아이랑 괜찮을 것 같아?' 남편에게 묻자 그도 잠깐의 만남이 마음에 여운으로 남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우리는 저녁을 먹다 말고 보호소에 크림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박은지 칼럼니스트(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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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기자 eurio@inb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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