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는 서울에 없다. 서울구치소는 광화문에서 약 25㎞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이곳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곳을 '서청대'라고 부른다. '서울구치소 내 청와대'라는 뜻이다. 이들에게 박 전 대통령은 아직도 '현직' 대통령이다.
1952년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의 67번째 생일인 2일 오전 11시. 서울구치소 출소자 가족 대기실 안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은 뭔가를 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고 있는 것은 접견민원인 서신. 수감자와 접견이 어려울 때 의사를 전달하는 편지같은 것이다. "애국자 시민"이라는 그들은 서신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축하와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 싶어 했다.
한 노인은 은행 현금봉투에 적어 온 편지를 서신 용지에 옮겨 쓰고 있었다. 미리 편지를 준비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영치금 30만 원을 준비해 왔는데 구치소 측에서 전달할 수 없다고 해서 편지만 다시 쓰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편지를 쓰는 노인의 손놀림을 따라 해진 소매가 펄럭거렸다.
구치소 앞은 이미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가득했다. 군복을 입은 남자 노인들이 많았다. 진정한 '한미동맹'이란 이런 것일까. 미군 야전상의에, 한국군의 신형 디지털 무늬 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고, 대형 스피커에서는 '애국가수'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얼마 전 '평창유감'이라는 노래로 웹 상에서 논란을 일으킨 '벌레소년'의 목소리도 들렸다. 10여 개의 보수 성향 인터넷 방송들은 현장 화면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주최 측이 설치한 연단 앞에서 축하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태극기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태극기가 물결이 돼 시야를 가렸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그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 등이 눈에 띄었다.
오후 2시 무렵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주최 측 관계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행렬을 인솔했다. 그는 행진에 참여한 이들을 향해 "앞뒤 간격 넓게 서라. 그래야 숫자가 많아 보인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주최 측은 2~3000명이 참석했다고 밝힌 반면, 경찰은 700명으로 추산했다.
행진 도중에 만난 한 60대 여성은 "박 전 대통령의 생신도 생신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죄가 없는데 구치소에 가 있다. 그 자체로 불법이고 불의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잃어버린 정의와 진실, 무너진 법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다.
충돌도 일어났다. 행진 대열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교통 통제에 일부 운전자들이 연속적으로 경적을 울린 게 발단이 됐다. 행진 대열 중 몇몇 이들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고성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는 이들을 경찰이 제지했다. 그러나 기어이 해당 차량에 다가가 운전자를 폭행한 이도 있었다. 폭행 피해자 조모씨는 그 자리에서 진술서를 작성해 경찰에 제출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참가자들은 이후에도 창문을 열고 행진을 내다보던 시민들을 향해서 "뭘 쳐다보냐"고 소리 질렀다. 현장을 촬영 중인 기자에게 다가가 "어디 기자냐"고 묻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하는 행진 대열을 향해 시민들은 생경한 눈빛을 보냈다. 인근에 거주한다는 한 행인은 "성조기를 왜 들고 있냐. 이유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대로변에 있는 음식점 직원이라는 다른 시민은 "몇 달에 한 번씩 가두행진을 했다. 그 전에는 이 정도로는 안했다. 일을 크게 벌렸네"라고 혀를 찼다.
행진 참가자들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냐"는 것이다. "지금 정치가 더 마음에 안 든다. 지금 대통령은 완전히 공산주의가 돼 간다. 우리 성당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완전히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이들은 행진을 따라가기 포기하고 다시 구치소 앞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80대 여성의 손수레 안에는 흰색 몰티즈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털이 듬성듬성했고, 눈물 자국이 진했다. 개의 이름은 '애국이'라고 했다.
이곳에도 태극기 집회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가판대가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물론 대한애국당 관련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상인은 뒤늦게 태극기를 사러 온 두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호객 중이었다. "깃대가 높은 것을 사야 인원 수가 많아 보인다. 평소에는 태극기를 떼고 산악회기를 달 수도 있다." 한참 구경하던 여성들 중 한 명이 1만 원을 내고 태극기를 샀다.
잠시 뒤 다른 여성이 가판대를 찾았다. 여성은 꽃꽂이에 쓰이는 플로랄폼을 가져와 소형 태극기 67개를 꽂아달라고 했다. 소형 태극기 가격은 개당 1000원. 상인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상인은 "웃음을 못 참겠다"면서, 혹여나 67개를 다 꽂지 못할까봐 신중하게 깃발을 꽂기 시작했다. '오늘 많이 파셨냐'는 질문에 상인은 "장사를 하는 게 아니다. 수익금은 애국당이나 보수단체에 기부한다"고 잘라 말했다.
취재 현장을 떠나기 직전 만난 80대 여성은 자신을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18대손'이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이들이 망상을 버려야 돼. 전 세계를 봐도 이렇게 대통령을 끌어내린 사례는 없다. 젊은이들이 몰라서 그래"라고 말했다. 정작 그는 전날(1일) 검찰이 20대 총선 직전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을 추가기소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