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대표작 ‘리골레토(Rigoletto)’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오페라 레퍼토리 중 하나다.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리골레토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항심으로 가득 찬 주인공인 어릿광대 리골레토에게 닥친 잔혹한 운명과 비극적 최후에 대해 다룬다.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직무대리 최선식)이 이번에 선보이는 리골레토는 1997년 이후 2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덕션이다. 극 전체를 아우르는 암울함과 현대적 감각이 더해졌을 뿐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했던 베르디의 정신을 되살렸다.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진행된 리골레토 제작발표회에는 연륜의 마에스트로 알랭 갱갈과 젊은 연출가 알렉산드로 탈레비, 질다 역의 소프라노 캐슬린 김·제시카 누초,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 정호윤·신상근, 리골레토 역의 바리톤 데비드 체코니·다비데 다미아니 등이 참석했다.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대화돼 나타나는 어두운 미래상)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현대적 감각의 미장센(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이 돋보이는 무대에는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어둠의 세상, 부패한 사회를 상징하는 나이트클럽이 들어선다.
알렉산드로 탈레비는 “작품의 배경은 권력 싸움이 계속되고 특히 여성은 본인의 나약함과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세상이다. 여성은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면 우상화되는 여신인 극단적인 존재”라며 “그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현대적인 콘셉트로 작품을 만들어갔다. 범죄나 갱스터의 면모를 극적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현대사회를 투영한 시공간적 상황 및 캐릭터의 설정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본능적 악함을 비판함과 동시에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강렬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탈레비는 “두 가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선, 리골레토가 그렇듯이 우리 모두 사악함이 주변에 있을 땐 남의 일 같지만 막상 내게 닥치게 되면 나 또한 사악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거기에서 오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는 비극이다. 리골레토와 질다는 비정상적인 부녀 관계다.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리골레토는 질다를 과잉보호하게 되고 이는 질다를 리골레토의 틀 안에 가둬 비정상적인 여자로 자라게 한다.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이 딸을 궁극적으로 파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리골레토는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