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선의로 기금을 받아 운영하는 비영리공익법인(지정기부금단체)의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사단법인 '새희망씨앗' 운영진이 기부금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3년간 기부금 128억원을 모집했지만, 실제 기부 사업에는 2억원만 사용하고 호화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온 K스포츠·미르재단 사건 탓에 가뜩이나 기부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이다. 공익법인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국내 기부금 규모는 3년째 늘지 않고 정체 상태다.
23일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부 사기'를 근절하려면 공익법인의 재무정보가 투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관리·감독 시스템은 턱없이 미흡하다. 현행법상 자산 5억원·수입 3억원 미만인 공익법인은 기부금을 어떻게 썼는지 신고할 의무가 없다. 이 법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결산정보 신고의무가 있는 공익법인은 국내 8585개로, 전체(종교재단 제외)의 52.4%에 불과하다. 공익법인 두 곳 중 한 곳 꼴로 '깜깜이 기부'가 이뤄지는 셈이다.
공시의무가 있더라도 느슨한 감독 탓에 마음만 먹으면 서류 조작이 가능하다. 기부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정부가 비영리단체들을 대상으로 연례 서류심사를 진행한다. 우리 정부에는 이런 심사 절차가 없다. '새희망씨앗'도 기부금 수익을 거짓으로 신고했다. 실제 기부수입은 128억원이었으나 신고된 수입은 22억원에 그쳤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정부가 의무공시 대상을 지정기부금단체 전체로 확대하고, 이를 저버리는 단체에는 면세혜택 자격을 박탈하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익법인에 대한 외부감사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외부감사 의무 기준을 공익법인의 특성에 맞게 자산 100억원 이상에서 수입금 일정금액 이상으로 수정해야 한다.
민간의 '눈먼 기부금' 감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국내에서는 재단법인 한국가이드스타 한 곳만이 감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3년 국세청으로부터 공익법인의 결산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는 단체로 지정됐다. 법인의 공시자료 등을 바탕으로 정량·정성평가를 한 후, 결과는 별점을 매겨 누구나 볼 수 있게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그간은 공익법인의 반발을 고려해 만점을 받은 단체들만 공개해 왔지만, 앞으로는 평가 결과를 전체 공개하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기부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다.
기부자 스스로도 적극적인 기부문화를 가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 사무총장은 "기부 피해는 계속 일어나고, 정부가 전부를 감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부자의 압박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기부 요청을 받으면 국세청, 가이드스타 등의 객관적 지표를 활용해 기부금이 잘 쓰이는지 확인하는 것이 기부자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