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➆] ‘성소수자 천국’ 대만…‘퀴어문화’ 통해 차별서 벗어나

2017-07-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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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동성결혼 지원 단체가 성소수자 커플을 테마로 낸 신문광고 포스터. [사진 출처=결혼평등권리 플랫폼 페이스북]

“동성애에 반대합니까?”

지난 4월 25월 우리나라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던진 질문이다.

문 후보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약간 당황해서 불안한 답변을 했다가, 그 다음날 선거 유세 도중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원들의 기습 시위로 10명이나 경찰에 연행되는 등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정치 후보가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주요 이슈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아시아권 나라에서는 아직도 공공연하게 토론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24일 대만에서 성소수자 관련 새로운 뉴스가 전해졌다. 대만 사법 최고 기관인 대법관 회의가 “현재 동성끼리의 결혼을 제한해 온 현행 민법은 위헌”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대만에서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 합법화’라는 제목으로 뉴스를 쏟아냈다.

대만에서는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성소수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대학 컴퍼스나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소수자를 주제로 가볍고 즐겁게 떠드는 대만 예능 프로그램 '강희가 왔다(康熙來了)' 포스터. [사진 출처=바이두]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강희가 왔다(康熙來了)’라는 예능 프로에서는 성소수자를 주제로 심각하지 않게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로 출연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떠든다.

차이이린(蔡依林)이라는 대만 최고 인기 가수는 음악 콘서트나 공연 등에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

대만 언론은 일본처럼 유명인의 시시콜콜한 신상을 터는 ‘황색 언론’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시각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성소수자 코드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자연스럽게 대만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대만에는 국제상을 수상한 굵직굵직한 성소수자 코드의 영화들이 꽤 많이 제작됐다. 24년 전,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공상을 수상한 리안(李安) 감독의 ‘결혼피로연(喜宴)’은 당시 많은 관객들을 동원했다.

이 영화는 그동안 관객들의 외면을 받으며 파국의 위기를 맞았던 대만 영화 산업에 새로운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다.

또한 리안 감독은 이 작품을 계기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는 영화에 동성애 정체성을 지닌 캐릭터를 등장시켜, 성소수자를 끌어안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2006년 ‘아시아주간(亞洲周刊)’과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리안 감독은 인터뷰에서 “서양문화는 양(陽)이고, 동방문화는 음(陰)”이라며 “동성애에 대해 동방문화가 서양문화보다 더 포용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가 상영될 당시 대만에는 ‘결혼피로연’이라는 소위 ‘게이바’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정도로 성소수자 문화가 사회 전반에 양성화됐다.

1990년대는 ‘결혼피로연’ 말고도 ‘패왕별희(霸王別姬)’, ‘애정만세(愛情萬歲)’, ‘하류(河流)’ 등 성소수자를 다룬 영화가 줄줄이 선보였다.

당시 대만은 계엄령이 해제돼 권위주의적 통치가 느슨해졌고 정치운동과 여성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다.

여러 시민 단체가 설립됐으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이 사회 구석구석 침투했다. 이러한 사회의 진보적 분위기에 편승해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 옹호 단체도 설립됐고, 이에 대한 담론의 장이 열렸다.

특히 1996년에는 타이베이 정부가 바이셴융(白先勇)의 성소수자 관련 소설인 ‘불효자(孽子)’의 주요 무대였던 신공원(현재 2·28 화평공원)과 그 주변을 ‘박애특구(博愛特區)’로 지정해 가족을 위한 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성소수자들은 공원 보존을 위해 성소수자 페스티발을 개최하며 저항 운동을 펼쳤다.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굳게 다문 입을 열었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최근 성소수자 관련 소재가 다시 한 번 전면에 부각된 것은 올해 대만 설 명절 때였다.

대만 동성 결혼 지원 단체가 정월 초에 성소수자 커플을 테마로 한 신문광고를 올렸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예술성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성소수자 커플이 각자 가족들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가족들은 “여자 친구는 생겼니?”, “왜 아직 결혼 안 해?”라고 묻는다.

“매년 설마다 같은 옷만 입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내년 설에는 둘이 함께 가족들과 보냈으면 좋겠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 포스터는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화제를 낳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확인시켰다.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여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대만의 한 조사에 따르면 동성 결혼을 지지한 사람은 2003년에는 약 23.64%였지만, 2013년에는 52.76%까지 급증했다. 성소수자를 대하는 대만 사회적 의식 수준이 이미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그만큼 생긴 것이다.

대만 성소수자 단체들은 동성애 합법화 이후에도 퀴어토론회, 전시회, 사진전 등 다양한 퀴어문화축제를 준비 중에 있으며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에 한국에서도 한국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다.

[황선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국립대만사범대학 문학박사)]


황선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국립대만사범대학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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