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슬람국가(IS) 추종 반군 마우테가 필리핀 남부에 위치함 섬 민다나오를 한달 넘게 점령한 동안 400여명이 사망했다. 정부군 71명, 시민 27명 등이 사망했고 수천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약 700km 떨어진 민다나오 섬에는 주민 2000만명이 살고 있다. 이슬람교인들이 주로 거주하면서 종교적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 곳이다.
◆ 두테르테 대통령, 계엄령 선포… 마르코스 독재시절 상기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25일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필리핀 헌법상 계엄령은 최장 60일간 발동할 수 있으며 의회 승인을 통해 연장 가능하다. 계엄령은 국가 비상 사태 시 병력으로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가 판단될 때 발동하는 국가 긴급명령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반란의 씨앗이 민다나오 전역에 심어졌다며 계엄령을 정당화했다.
필리핀 주민들은 계엄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앞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1972년부터 계엄령을 선포하고 14년간 독재자의 길을 걷었다. 민중의 힘 혁명으로 사퇴할 때까지 수만 명이 투옥되고 실종됐었다. 시민들은 이번 계엄령이 이전 독재시절을 불러일으킬지 두려워하고 강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슬람 정서가 깊은 민다나오에서 갈등을 재점화시킬 수 있단 우려도 나왔다.
필리핀 인권단체연합인 카라파탄은 이번 계엄령이 대규모 인권침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수백명의 민간인을 죽일 수 있는 공습 등 군사작전을 강화되고 불법 체포, 고문, 처형 등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헌법상 긴급조치 권한을 인신보호영장제도의 시행을 중단했다. 법원이 피구금자의 석방을 명령할 수 있는 구제 수단이 중지되면서 계엄군이나 경찰 등이 테러 또는 반란 가담 용의자를 영장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다.
◆ 두테르테 대통령의 최대 난제… 위기관리능력 시험대
FT는 이번 갈등이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저소득층으로부터 지지가 높은데 특히 민다나오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민다나오는 유독 경제 성장이 더딘 지역이다. 지난해 필리핀의 전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6.9%인데 반해 민다나오의 GDP 성장률은 4.9%에 그친다. 빈곤률은 36.2%에 달하며 필리핀 빈곤층의 40.4%를 차지한다. 필리핀 전체 빈곤률은 21.6%다.
필리핀 정부가 경제 정책의 핵심 아젠다를 '포괄적인 성장'로 두고 마닐라는 물론 다른 지역에도 인프라 및 사회적 투자를 확충하는데 힘썼다. 마우테와 교전이 단기 경제 성과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민다나오에 대한 개발을 방해하고 이 지역 경제 성장을 지연시킬 가능성은 높다.
게다가 인도적 지원과 재건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13년 하이옌 태풍이 강타했을 당시 무정부 상황이라 구호물자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었다. 도로 복구도 미진하고 치안 부재로 차량을 운반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전 대통령은 늑장 대처, 피해 현황 은폐로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이번에도 구조물품의 전달이 어려워진다면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손상되고 대중 불만도 커질 수 있다고 FT는 우려했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약해지면 여당의 태도도 방어적으로 바뀌고 의회에서 법안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번 갈등이 잘 마무리된다면 떨어지던 지지도 기조를 전환하고 순조롭게 대통령 허니문 기간을 보낼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