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한국기업들이 해외사업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외면 받으며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무관심으로 일변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불만으로 시장에서 퇴출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2017년에는 미·중간 갈등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에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한국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해외기업들은 미국으로 수출에 제약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은 자국 기업에게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을 못하도록 엄포를 놓으면서도, 미국에 남겠다는 기업에게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면서 “제조업을 부흥시키면서 고용을 유지 또는 늘리겠다는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은 해외기업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당장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올해 미국 투자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올린 기업은 삼성전자 뿐이다.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인 비브랩스에 이어 세계 최대 전장전문 기업 하만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반면 LG그룹과 한화그룹은 지난 8월 인수에 나섰던 자동차 소재 기업 CSP 인수가 무산됐으며, 앞서 6월에는 롯데케미칼이 PVC업체인 액시올 인수를 추진했으나 검찰조사 등 국내 경영환경 악화로 포기하는 등 미국 진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에서는 사드 배치에 따른 험한론의 확산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외면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미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한국기업과의 비즈니스를 축소 또는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정보를 접했다며, 현지 사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자부품 업체 관계자는 “중국기업 관계자들의 태도가 1년 전에 비해 상당히 바뀌었고, 협상 테이블에서도 공공연히 사드는 물론 ‘최순실 게이트’ 등 한국의 사정을 거론하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와 기업들은 정부가 빨리 국정을 정상화 해 경제 외교라인을 총동원하여 현 상황을 타개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추락을 막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도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등 국내 사태에 발목이 잡혀 활동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공백 착실히 빼먹는 중국·일본 기업들
한국기업들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이, 중국과 일본기업들은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익을 나눠갖고 있다.
먼저, 일본 기업들은 지난주 19~22일 3일간 8건, 한화로 약 8조원 규모의 미국기업 인수 및 현지 출자를 결정했으며, 향후에도 투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손정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그룹은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에서 향후 4년간 미국에 500억 달러(약 6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일본 은행들도 미국 투자를 확대해 나갈 것임을 내비쳤다.
일본 기업들의 미국 쇼핑은 트럼프 노믹스에 적극 편승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도 맞물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 기업의 주된 투자처는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경제 부흥을 위해 약속한 인프라 투자와 연계된 분야인데, 실제 투자가 집행되면 큰 수익이 기대된다.
중국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대중 강경노선으로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미국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12일 CNN머니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중국 최대 부호인 왕젠린 다롄완다그룹 회장은 현장에서 만난 크리스토퍼 도드 미국 영화협회 회장이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미국에 100억 달러 넘게 투자했으며 2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만약 무언가 잘못되면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중국기업을 건드리지 말라는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경고로 비쳐진다.
중국과 일본 정부는 정치적 현안으로는 갈등을 겪고 있으나 비즈니스에서는 밀월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히타치와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의 대표 전자·IT업체들이 중국 기업들과 손을 잡고 제조업 비즈니스의 신모델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양국기업의 맞손은 미국 시장 진출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한국 기업들에겐 위협적이다.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발 경제구조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어 내년 사업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