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서울 구로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A씨(28)에게 문화생활은 먼 나라 이야기다. 한 달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도 생활비와 교통비, 통신비, 학원비를 제외하고 나면 영화 한 편 보기에도 벅차다. 최근에는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겠다는 얘기까지 해 간간히 봤던 영화도 못 볼 형편에 처했다. A씨는 전형적인 ‘문화소외계층’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15조의3에 따르면 문화소외계층은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문화 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국민으로 정의된다. 금전적인 어려움이나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 지역적 한계 등으로 인해 문화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문화소외계층에 해당한다.
삼성과 LG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문화생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별도의 자금을 출자해 문화재단을 설립해왔다. 1960년대에 지어진 삼성문화재단(1965년), LG연암문화재단(1969년)을 시작으로 재단들은 1990년대까지는 문화시설 건립과 음악영재 양성 등 정통 클래식 문화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문화재단의 운영이 수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간한 ‘2015년 주요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를 살펴보면 2014년 기업재단 사업비 집행 규모는 의료보건, 사회복지, 교육·학교·학술지원 순이었다. 참여율로도 교육 분야가 가장 높았고, 사회복지가 뒤를 이었다.
구체적인 사업비 지출 비중에서도 의료·보건 분야는 90.5%로 압도적이었다. 이에 반해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출은 1.9%에 불과했다. 그 외 사회복지 3.5%, 교육 3.0%, 환경 0.4%, 농어촌 0.2% 등이었다.
분야별 참여 현황에서도 교육과 사회·복지에는 각각 68.2%, 48.5%에 이르는 기업재단들이 참여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참여한 재단은 28.8%에 머물렀다.
윤경수 조사역은 “의료·보건 분야 사업추진 재단에는 병원 운영 재단이 포함돼있다”면서 “2014년 의료·보건 분야에는 대형 병원 시설 투자가 이뤄지면서 사업비가 증가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티켓 가격, 일반 클래식 공연과 비슷한 수준…시간대도 어중간
지난 4월 서울문화재단이 발표한 ‘2015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 공연 관람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부담인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티켓 가격이 문화소외계층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인 셈이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만들어진 대기업의 문화재단 역시 이 부분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사재 100억원을 출연해 만든 롯데문화재단은 1500억원을 들여 클래식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을 지었다. 오는 8월 개관 예정인 롯데콘서트홀의 공연 가격은 최고 3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한 클래식 공연의 티켓 최고가는 14만원이다.
공연 시간대도 평일 낮 시간에 주로 배치돼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쉽지 않다. 특히 생업과 학업 현장에 있을 직장인과 학생들이 클래식 공연을 즐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롯데콘서트홀이 롯데월드몰과 인접해 낮 시간 쇼핑을 마친 주부들이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올 수 있게끔 공연 일정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수익 추구보다는 문화·예술 확산에 힘써야
문화재단은 수익 추구보다 문화·예술 확산에 초점을 맞춰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기업의 문화재단 설립 목적이 사회 공익적 차원에서 이뤄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김의준 롯데콘서트홀 전 대표가 사임했다. 콘서트홀 개관 5개월여를 앞두고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사임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콘서트홀 운영을 두고 그룹측과 빚은 갈등이 큰 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대표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자 부담이 커지고 손실이 나면 회사측에서 불편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공연장 운영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이다. 기업의 문화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