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종호 기자 =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겠다고 그 많은 사람의 믿음을 단 한순간에 모두 저버렸다. 이게 배신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배신이냐.”(황춘자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 vs “원조 친박(친박근혜)이었는 데도, 진정한 정치를 하러 건너온 것 아니냐. 오히려 그런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진영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배신’ 이슈가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의 가장 큰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를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진 후보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컷오프(공천배제)된 이후 탈당을 선언,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아직은 어색한 파란색 점퍼를 입은 채 4선에 도전하는 진 후보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용산구청장 후보로 나왔다가 한 차례 고배를 마셨던 황 후보 간의 격돌은 그야말로 ‘혼전’ 그 자체다.
선거 초반 진 후보는 현직 의원 프리미엄에 따른 높은 인지도로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황 후보를 앞섰다. 그러나 총선 디데이(D-DAY)가 한 자리로 줄어들자 오히려 황 후보가 오차범위를 넘는 우세로 열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실제 문화일보가 포커스컴퍼니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황 후보는 40.0%의 지지율로 진 후보(30.8%)를 추월, 격차를 오차범위(±4.4%포인트) 이상으로 늘렸다. 곽태원 국민의당 후보와 정연욱 정의당 후보는 각각 10.2%, 2.3%의 지지를 받았다. (성인 500명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4.4%포인트·응답률은 9.4%. 공표 날짜는 3일이며 유선전화 면접 방식.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지난 5일 지하철 4호선 이촌역 인근에서 출근길 유세 중이던 황 후보는 “용산 주민들 사이에서 진 후보의 ‘배신의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날로 커지면서 (지지율도)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에 큰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반드시 진 후보를 전국 최다 득표차로 누르고 승리해 보일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황 후보가 여러 명의 선거원들과 함께 활발한 유세를 펼친 반면, 진 후보는 유세 일정을 비공개로 전환한 채 홀로 용산 구석구석을 돌며 조용히 민심 잡기에 집중했다. ‘배신’이나 ‘역전’ 등 민감한 질문에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민주에 입당했다. 제 진심은 앞으로의 정치 활동과 함께 밝혀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당적을 옮기자마자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지역구에 100%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책으로 주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강조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여론조사만큼이나 용산구 주민들의 반응도 크게 엇갈렸다. 특히 진 후보의 ‘진영(陣營)’ 이동을 배신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의 번호가 달라졌다.
용산구 이촌동 이촌종합시장 상인 김모(54)씨는 “이유가 어찌됐든 하루아침에 당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당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주변 사람도 많았다”며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왔다면 뽑아줬을 수도 있었겠지만, 도의적으로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 공인중개업소 직원 최모(49·여)씨도 “사실 그동안 진 후보가 당의 일을 집중하느라, 지역구에 소홀했다는 목소리도 많았기에 차라리 이참에 용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용산 아이파크몰 내 전자기기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신모(33)씨는 “사실상 당이 내친 것이지 배신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당만 보고 황 후보를 뽑기에는 정책도 힘도 부족하다. 당을 옮겨서도 중심에 자리 잡은 진 후보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설명했다.
남영동 주민센터 앞을 지나던 숙명여대생 이모(28·씨)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지역 공약과 정책을 갖고 싸워야지 당을 옮겼다는 이유로 배신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는 건 ‘구태(舊態)’가 아닌가 싶다”면서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진 후보를 겸손하면서도 세련된 정치인으로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