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4·13 총선을 앞둔 여야는 19대 국회에서 ‘유종의 미’는커녕 쟁점 법안 협상을 놓고 한 치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간제법을 뺀 노동개혁4법을 ‘신의 한수’로 제시했지만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가로 막혀 나머지 3개 법안 통과마저 불투명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이른바 ‘뿌리산업(중소기업)’이 살아나고 55세 이상 중·장년층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다. 반면 야당과 노동계는 파견근로자가 무분별하게 양산돼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정규직 대신 ‘나쁜 일자리’만 늘어날 것이란 우려다.
현행 파견법은 비정규직 증가를 막기 위해 파견가능 범위를 32개 업종, 192개 직종으로 제한하고 허용 기간도 최대 2년, 계약 갱신횟수는 1회로 파견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파견직 근로자는 아웃소싱 회사에 소속돼 다른 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는 이들로 콜센터 직원, 빌딩 청소노동자, 경비원, 급식업체 직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파견법 개정안은 △55세 이상 고령자·근로소득 상위 25%(2015년 기준 5600만원) 전문직 등 파견 허용업무 확대 △6개 뿌리산업(금형·주조·용접·소성가공·표면처리·열처리)에 파견 허용 등이 골자다.
개정안은 또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법률로 명확히 구분하고, 유·도선 선원, 철도종사자 등 안전·보건 관리 업무에 대한 파견 금지도 담고 있다. 파견과 도급의 구분을 법률로 명확히 해 불법 파견을 방지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 경각심이 높아진 생명·안전 업무에 대한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야당과 노동계는 파견법이 개정되면 용역·사내하청 등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이 양산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우려다. 무엇보다 ‘뿌리산업 허용 대상’을 늘릴 경우, 제조업 위주 재벌·대기업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 위주 대기업은 현행 파견법에서 엄격히 금지된 ‘직접생산 공정’ 일부를 사내하도급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파견근로자를 써왔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이를 불법파견으로 판결, 현대차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했다.
만약 개정 파견법이 통과하면, 현대차 등이 그동안 공공연하게 해온 ‘불법파견’이 사실상 합법화 된다. 결국 제조업 위주 대기업은 ‘뿌리산업 허용’을 이유로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을 최소화 하고 파견인력을 대거 활용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 야당과 노동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원천차단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고용노동부는 대기업들의 이런 편법을 금지하는 조항을 파견법에 추가할 수 있고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견·도급 기준을 명확히 하면 불법 파견이 합법화 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 정규직→파견근로자 전환, 480만명 '고용 불안’ 덜덜
노동계는 또한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허용 대상이 되는 고령자 366만 명, 고소득 전문직 75만 명, 뿌리산업 종사자 42만 명 등 약 483만 명이 고용 불안에 노출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의 정규직도 파견직으로 전환되거나 해고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또한 2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야당과 노동계 논리대로라면 (현재 파견 허용업종) 32개 업무 종사자 470만명 모두 파견직이어야 하지만 실제는 1.33%에 불과한 6만3000명”이라며 “그야말로 괴담 수준으로 침소봉대된 주장으로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고용부 또한 “법 통과 시 새로 허용되는 483만 명 모두 파견으로 전환된다는 (야당과 노동계의) 주장은 기계적인 합산 논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목희 더민주 정책위의장은 “파견법은 지금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있는 사람들을 파견직으로 전환시키는 법”이란 주장이다. 그는 “현재 32개의 파견업종이 있는데, 그중 파견이 잘 일어나지 않는 업종을 바꿔서 예컨대 고용이 좀 늘어날 수 있는 업종이라든지 파견보다도 더 근로조건이 나쁜 도급이나 용역 등을 파견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파견법 통과를 전제로 노동개혁4법과 선거구획정안 연계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더민주는 이를 연계할 경우 29일 본회의도 열 수 없다고 맞서고 있어, 사실상 1월 임시국회 내 노동개혁4법 처리는 2월로 넘어가더라도 처리가 요원하다.
이와 관련 김무성 대표는 “야당이 파견법을 반대하며 노동개혁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말로는 경제정당 외치면서 민생경제 살리는 실천 의지가 전혀 없다”면서 1월 내 처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