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기행>가중호걸(歌中豪傑) 명창 권삼득의 향기(2)

2014-12-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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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최규온 기자 =권삼득은 조선시대 최초의 ‘비가비(非甲이)’ 명창으로 불린다.

비가비란 학식 있는 한량 신분의 명창을 일컫는 말로 훗날 ‘양반광대’라는 용어로 변했다. 천민 신분의 광대나 재인 출신의 명창과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기도 하다. 최선달·정춘풍 등이 대표적인 비가비이다.

단재 신재효는 권삼득의 호탕하면서 기개에 찬 소리를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소리’에 비유했다.
그를 ‘가중호걸’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덜렁재’의 창시자로 후대에 전해진다.

'덜렁재'란 판소리에서 ‘덜렁덜렁 뽐 내는’ 부분의 넘겨 감치며 특유하게 ‘덜렁덜렁’하는 자태를 의미한다.

흥부가 중 ‘재비창(唱)’에서 놀부가 덜렁덜렁하는 품새로 재비를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일컫는다.

-귀신이 나온다는 구멍 ‘소리굴’

구멍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고 전해지는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마을 뒷산 '소리굴'[사진제공=익산시]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는 현재 그의 묘역과 생가터, 소리굴 등이 있다. 여기서 ‘소리굴’에 관한 흥미 있는 얘기 하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권삼득 묘 옆에 구멍이 하나 패여 있는데 이곳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내용이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구억마을 주민 한 사람이 마을 뒷동산에 올랐다가 잡초 무성한 어느 무덤 옆에 어른 머리가 하나 들어갈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을 주민은 구멍을 매운 뒤 며칠 후 우연히 무덤 근처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구멍이 다시 뚫려 있었던 것이다. “짐승들의 소행이겠지” 하고 그는 그 구멍을 다시 매웠다. 이튿날 무덤에 올라온 마을주민은 도 한 번 놀랐다. 어제 매웠던 구멍이 또 다시 뚫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혼비백산 마을로 내려왔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마을사람들이 단체로 뒷산에 올라가 뚫린 구멍을 매웠지만 웬걸, 다음 날 구멍은 또 뚫려 있었다. 그 뒤 마을사람들은 ‘귀신이 나오는 구멍’이라 해서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몇 년 뒤 구멍 난 묘가 명창 권삼득 묘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전북대 홍모 교수와 판소리 연구가 이동백씨가 현지를 답사했다. 두 학자는 무덤을 답사하던 중 놀라운 일을 당했다.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게 됐다는 것이다.

두 학자의 얘기로는 그게 판소리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죽은 권삼득의 영혼이 지하에서 덜렁덜렁 재비창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얘기일까?

전국 각지를 떠돌며 멋과 소리, 낭만을 만끽했던 권삼득은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일생을 마쳤다. 권삼득 명창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소리가 좋아/소리 위해 태어난 인생이라./양반도 싫고 벼슬도 싫어/오직 소리와 더불어 살다 가신/비가비 명창/국창 권삼득 명창/한 많은 그 세상/맺히고 서린 애환을 접어두고/여기 이 목정에 고이 쉬시나니/영령 앞에 귀 기울이며/홍보가 덜렁제 한 마당이/생시인 듯 쩌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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