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자존심이 아프다

2014-12-21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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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워싱턴 특파원 홍가온 기자 =이번에는 큰게 한방 터졌다. 조용히 한해를 넘기나 했는데 미국 본토에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은 이 사건으로 사지가 아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였으니 그 아픔은 이만저만이 아닌듯 하다.

지난 11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해킹을 당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5편과 소니 픽처스의 간부를 비롯, 영화배우 들의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털렸다.

소니는 자체 조사팀을 조직했고, 미연방수사국도 부랴 부랴 범인 색출에 나섰다. 해킹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상당히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GOP(평화의 수호자)라는 해커 집단은 소니 픽처스 해킹 공격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것이다.

GOP라는 생소한 이름의 해커집단은 소니사를 상대로 협박을 시작했다. 소니 픽퍼스가 25일 개봉하겠다고 밝힌 코미디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해킹조직이 협박까지 해가며 상영을 반대했던 이 영화는 김정일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암살 시도를 소재로 삼고 있다.

GOP는 영화를 개봉할시 극장에서는 지난 2001년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9.11 테러사건과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이쯤 되자 영화사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와 정보관계기관, 그리고 학술단체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킹의 배경과 해킹조직의 실체에 관한 나름대로의 의견들을 내놨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바로 해킹의 주체 또는 배후가 북한일 거란 추측이었다.

워싱턴DC에서 미국의 한 씽크탱크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사이버 해킹전문가는 소니 픽처스 해킹은 북한의 소행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때 해킹으로 자금을 모았던 러시아 마피아의 경우 대기업의 정보를 빼내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뒤 돈을 챙기는 등 대부분의 해킹 집단은 물질적, 금전적 댓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소니 픽처스의 경우에는 그런것 대신 특정 영화의 상영을 말라고 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언론들도 여러가지 가능성을 내놨지만 대체로 북한의 소행이라는 쪽으로 의견들이 모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CNN은 GOP가 다른 영화들은 인터넷에 공개를 하면서 '인터넷'만 유독 빼가지 않았고 공개도 안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결국 해킹 집단이 누구이든지간에 그 영화, 즉 '인터뷰'가 세상에 알려지는게, 그리고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게 되는게 무엇보다 싫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차에 소니 픽처스는 끝내 해킹 집단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 '인터뷰'의 상영을 전면 취소하게 이르렀다.

물론 미국의 극장 체인점들이 상영을 못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소니사가 상영을 취소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미연방수사국이 성명서 형태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언론을 시작으로 여론이 급속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미연방수사국이 이번 소니 해킹 사건의 주모자로 북한을 지목하자 미국 내에서는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이버 테러에 굴복해 소니사가 영화상영을 취소한 것만해도 기분이 나쁜데,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북한에 의해 해킹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적잖이 자좀심이 상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말 연설을 통해 소니사의 이른 상영 취소 결정을 '실수'라고 하면서 질책했다.

상영 취소결정 전에 "자신과 한번이라도 논의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일부 미국인들은 소니의 이번 상영 취소 결정이 추후에 생길 수 있는 파급효과와 미국의 이미지는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었다며 소니사를 비난하기도 했다.

특히 소니사가 일본기업이라는 사실을 들어 비아냥거리는 글들도 인터넷 SNS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미국이 왜 이번 사건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동안 핵문제 등 북한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주도해 나가고 있던 미국인데, 사이버 테러 위협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해킹 공격의 실체가 밝혀진 만큼 오바마 대통령도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난 상처는 금방 회복되긴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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