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서적 읽은 죄, 고문에 옥살이…32년 만에 무죄 판결

2014-11-2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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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보루 역할 못해 고통당한 피고인에게 사과"

[사진=아주경제DB]


아주경제 박성준 기자 = 1980년대 이른바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50대가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982년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던 김모(53)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당시 경희대 재학 중이던 1981년 6월 '반국가단체'인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함께 북한을 찬양, 고무, 선전하고 이를 위한 표현물을 취득했다는 등의 혐의로 영장도 없이 연행됐다.

그가 '의식화 학습'을 위해 함께 읽거나 샀다는 문제의 책들은 E.H.카의 '러시아 혁명사'와 '볼셰비키 혁명', 모리스 도브의 '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에리히 프롬의 '사회주의 휴머니즘' 등 석학들의 저서였다.

김씨는 약 1개월 만에 풀려난 뒤 같은 해 9월에도 또 한차례 영장 없이 불법 구금당했다. 이 기간 그는 고문과 협박 끝에 북한에 동조하는 등 이적활동을 했다고 자백했다.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압수된 서적들뿐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진술도 번복됐지만 결국 이듬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당시 공소장에서 김씨가 한 동아리에 가입해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E.R.셀리그먼의 '경제사관의 제문제' 같은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정부 비판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변 판사는 "김씨의 자술서와 신문조서는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에 의해 작성됐고, 당시 재판 과정에서도 내용이 부인돼 증거능력이 없다"며 "압수물도 내용상으로 북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출판사에서 정상적으로 출판한 서적이나 복사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사법부가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고통을 당한 김씨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재심 판결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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