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이불(50)이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상상의 작품이 현실로 나타났다. 길이 33m, 폭 18m, 높이 7m 규모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전시실에 전시된 이불의 '태양의 도시 Ⅱ'(Civitas Solis Ⅱ)다.
사방벽면과 바닥면 전체가 거울과 그 조각들의 굴절과 반사를 반영한 미로 형식의 대형설치작업이다. 반사에 반사, 복사에 복사를 이루는 전시장은 전시장 끝에서 점멸을 반복하는 전구들의 향연으로 신비감을 극대화한다. 마치 작가의 상상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으로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이불은 이번 전시에 대형 설치 작품 2점을 소개한다.
이불은 "이렇게 대규모의 작업은 처음이어서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지만 그동안 구상했던 작업을 실현한 작품"이라며 "지원금이 충분해 하고싶었던 작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업에는 5억원정도가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사와 굴절이 공간을 무한히 확장하는 작품 '태양의 도시 Ⅱ'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공상적 공산주의자인 톰마소 캄파넬라의 저서 '태양의 도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원형의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형태와 그에 내재한 의미를 차용해 거울의 반사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태양의 도시 Ⅱ'를 통과하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 우주비행선같은 작품으로 빠져들게한다.
'새벽의 노래 Ⅲ'로 명명된 작품은 15m 높이의 전시 환경을 활용해 수직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실제로 1900년대 초반 모더니티의 상징물인 힌덴부르크 비행선 등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 유럽 중세때 유행했던 연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삶의 아름다움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필멸성을 담았다. 거대한 탑에 LED 조명들과 전실에 분사된 안개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더한다.
두 작품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진행해온 '나의 거대서사'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다. '나의 거대서사'는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인류의 역사적 사건들과 결합시키고 성찰과 비판의 시각을 제시하는 대규모 설치작업이다. 이번 작품은 문학으로 따지면 장편에 돌입한 셈이다. 작업과정 자체가 거대 서사다.
달랑 2개의 작품뿐이어서일까. 거대한 규모로 압도하지만 좀 싱겁고 아쉬운 느낌이 든다.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고 하자 작가는 "작품의 주제가 어렵냐 어렵지 않으냐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제가 경험하고 추구하는 대로 작업한다"며 "관객이 나름의 배경으로 제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불은 “인간이 가진 비전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행위, 좌절하고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했다”며 “자신의 인생을 배경으로 작품을 바라봤으면 한다. 좀 더 욕심을 내면 내 작품과 사랑에 빠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02)3701-9500.
▶설치작가 이불=강원 영월 출생으로 '이불'이라는 이름은 본명이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을 뜻하는 '해돋을 불(昢)’자를 쓴다. 1990년대 후반 사이보그 시리즈 작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 개인의 기억·경험과 결합된 거대 서사를 대규모 설치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999년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여성작가 최초로 도쿄 모리미술관(2012)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그동안 룩셈부르크 무담(2012),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2007), 살라만카 도무스 아티움(2007), 시드니 현대미술관(2004), 글래스고 현대미술센터(2003), MAC 마르세유 현대미술관(2003), 토론토 파워플랜트(2002), 뉴욕 뉴 뮤지엄(2002) 등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