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회장이 찾아간 ‘오아시스’에는 물이 없었다

2013-10-0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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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STX프랑스 생 나제르 조선소에서 열린 세계 최대 크기의 크루즈선 착공을 위한 상량식에서 참석자들이 크루즈선 모형으로 절단한 철판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달 23일 STX유럽의 프랑스 법인인 STX프랑스 생 나제르 조선소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STX프랑스가 지난해 12월 수주한 세계 최대 규모의 크루주선 건조를 위한 첫 강제절단 및 상량식을 개최한 것이다. 회사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크루즈선사 로열 캐리비언이 발주한 것으로, 2009년 건조된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 2010년 인도된 ‘얼루어 오브 더 시즈’와 동급 크루즈선이다.
앞선 두 척은 STX그룹으로 편입되기 이전인 2006년 당시 야커야즈가 계약한 반면 이번에 건조를 시작하는 크루즈선은 2007년 STX그룹이 최대주주의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획득한 뒤 ‘STX’ 사명으로 수주한 세계 최대 크루즈선이다.

그러나, 이 같은 뜻 깊은 행사에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물론 김서주 STX핀란드 대표 등 STX 소속 한국인 임원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 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간 데다가 STX유럽은 매각이 결정돼 새주인을 찾고 있고, 강 회장은 지분법상 대주주인 STX조선해양 최고경영자(CEO)에서 사임했으니 그가 초청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뒷맛은 씁쓸하다.

로열 캐리비언이 세계 최대 크루즈선 클래스 선명을 ‘오아시스’로 작명한 것이 STX유럽으로선 기구한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당시에는 몰랐다. STX유럽은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 독일의 마이어베르트와 함께 세계 3대 크루즈 조선사로 꼽히지만 시장 점유율 면에서 두 업체에게 다소 처지는 3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오아시스급 크루즈선을 수주하고 건조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야커야즈 시절부터 맺어온 로열 캐리비언과의 두터운 유대 관계 덕분이었다. 로열 캐리비언이 운용중인 크루즈선 21척 가운데 17척은 STX유럽이 건조한 것이다.

그런데, 오아시스급 크루즈선을 수주한 뒤 야커야즈는 STX에 넘어갔다. 이어 지난해 STX유럽은 이 회사로부터 추가 수주를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 이는 계약분은 STX그룹 계열의 STX유럽 자격으로 수주한 마지막 크루즈선이다. 생 나제르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한 크루즈선은 오는 2016년 여름 인도될 예정인데, 아마도 인도식 날 STX유럽 대신 새로운 사명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STX유럽이 건조한 세계 최대 크루즈선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호

강 회장에게도 오아시스급 크루즈선은 희망이자 절망이 됐다. 진해조선소 공간의 한계로 조선소 추가 확보를 추진하던 그는 핀란드와 프랑스, 브라질 등 글로벌 생산기지를 갖춘 이 회사는 크루즈선을 비롯해 극지용 특수선박, 항공모함을 비롯한 군함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는 야커야즈가 모험을 걸어볼 만한 대상이었다. 또한 야커야즈를 인수하면 중국 다롄에 건설하고 있던 조선소와 결합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오아시스급 수주까지 접했으니 강 회장의 눈에 야커야즈는 그야말로 ‘오아시스’로 보였을 것이다.

인수 성공 후 그의 자부심은 2009년 국내 취재진들을 핀란드 투르크 조선소로 초청해 진수를 앞둔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를 공개하는 등 크루즈선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설파하며 극에 달했다. 아마 그 때가 강 회장의 STX유럽이 누린 최고 전성기였다.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몰아닥친 유로존 경제위기로 모든 선주들이 신조 발주를 줄였고, 크루즈선사 발주는 아예 끊어지다시피 했다. 일감이 떨어진 투르크와 생 나제르 등 STX유럽이 보유한 조선소들은 많은 직원들을 수시로 떠나보냈다. 오아시스는 물이 있어 존재하는 것인데, 그 오아시스에 물이 말라버려 다른 곳에서 물을 길러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알짜 사업인 해양작업지원선(OSV) 부문을 떼어내 STX OSV란 독립 회사를 만들어 매각하고 STX그룹 차원에서도 자금을 지원하는 등 노력을 펼쳤지만 가뭄에 콩 나듯 수주 물량으로는 회사가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STX유럽은 다롄 조선소와 함께 STX그룹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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