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유가와 환율이 늘 수출의 불안요소였다. 따라서 유가와 환율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국은 그동안 대일 수입의존도를 줄이고, 수출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엔저 영향력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주력 수출상품 중복 현상이 여전히 심한 가운데 엔저 장기화라는 단 하나의 원인이 불거지면서, 그동안의 노력을 헛되게 하듯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수출이 감소하는 고질적인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철강·기계·석유화학 등 대규모 장치산업의 피해가 크다는 점은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내수 침체는 물론 글로벌 경기부진의 영향에 더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신흥국가까지 더해져 경쟁이 치열해졌고, 공급과잉으로 인해 제품 판매에 있어 '가격'이 우선 선택요소로 작용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수주는 물론 제품 생산까지 감소 또는 전년 동기 대비 동일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은 특별한 모멘텀이 없다면 가을 성수기 수주전에서도 어려움이 예상될 것임을 의미한다. 다음은 업종별 전망.
◆TV·전자가전, 엔저에도 끄떡없이 성장세 지속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내 가전업체들은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기세는 올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타격은 불가피한 만큼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전산업은 하반기에도 성장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가전업계가 하반기 중 3.7%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상반기의 11.5%에 비해서는 둔화한 수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올해 전체로는 7.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 -5.2%와 비교하면 업황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인위적인 엔화 약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국내 가전업체들의 수익성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가격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스마트 TV와 UHD TV, 고용량 냉장고 및 세탁기 등은 품질과 디자인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석권해 나가고 있다.
김재홍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도 최근 정부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고에서 "엔저에 맞서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제품의 기술·디자인 등 비가격 경쟁력 요소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일본산 부품 및 소재의 수입이 많은 국내 가전산업의 특성도 엔저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엔저가 일본산 부품 및 소재의 수입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26일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엔저 리스크에 대해 "(가전 등) 주력 수출품의 해외 생산 비중이 높고 일본산 부품 및 소재의 수입도 많아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엔·달러 환율이 연평균 100엔에 도달하면 올해 가전 부문의 무역수지 흑자가 7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엔저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고 일본 기업들도 소매가 인하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정 소장은 "엔저에 힘입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될 수는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 내구재는 엔저 효과 미미
아주경제 이혜림 기자= 반도체·LCD 등 주요 전자 내구재 부문은 올 하반기 엔저로 인한 단기적인 충격없이 수출 호조세를 보일 전망이다.
3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급락한 올 1~4월 반도체·LCD 품목의 한국 수출 증가율은 8.2%, 6.8%를 기록한 반면 일본 수출 증가율은 각각 -14%, -10%로 오히려 수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 전자업체들은 이미 1990년대 후반 반도체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줬다"며 "이는 지난 2004~2007년 엔저 시기에 우리 수출업체들이 과감한 투자로 주요 전자품목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반도체 부문에서 큰 폭의 수출 증가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2013년 하반기 주요 산업별 수출증가율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 하반기 국내 반도체 수출이 전년 대비 9.6%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와 한화투자증권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매출액은 전월 대비 11% 증가한 57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7%가량 늘어난 수치다.
5월 D램 매출액은 전월 대비 10% 증가한 29.7억 달러로 연초 이후 증가세를 지속했다. 낸드플래시 매출액도 전월 대비 14% 증가한 23.9억 달러로 전월 대비 상승폭을 크게 확대했다.
최근의 이런 움직임은 하반기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신모델 출시를 앞둔 주요 업체들이 낸드플래시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반도체 수출이 오는 3분기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안성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양사의 연간 반도체 사업부문 영업이익이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4대 6의 비율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업황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등의 영향으로 3분기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가 4분기 들어 계절적 요인으로 주춤하겠지만 둔화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디스플레이 부문 수출은 최근 중국의 절전형 가전제품 보조금 정책 종료에 따른 TV 수요 감소와 LCD 패널의 단가 하락 등으로 보합세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실장은 "디스플레이의 경우 대중국 수출이 많은데 최근 중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종료하면서 중국 내 소비자들이 TV 구매를 미루고 있다"며 "TV 수요 감소와 LCD 패널 가격 하락 등으로 올 하반기 디스플레이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마트폰, 변함없는 수출 효자로 탄력 더 받을 듯
올 하반기 IT제조업군의 상반기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스마트폰 수출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관련업계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포함한 IT제조업군이 하반기 수출 호조세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하반기 정보통신기기의 수출 증가율은 8.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수출 증가율에 힘입어 정보통신기기는 스마트폰, 휴대용 PC 및 관련 부품을 중심으로 6.2% 생산 확대가 예상된다.
한국산 스마트폰의 수출 상승세는 하반기에도 변함없을 전망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갤럭시S4를 출시 두 달 만에 전 세계 시장에서 2000만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출시 한 달 만인 5월 말에 판매량 1000만대를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 수출 호조에도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또한 삼성이 애초 갤럭시S4의 판매 목표량을 1억대로 밝힌 만큼 하반기에도 글로벌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LG전자와 팬택도 하반기 스마트폰 수출에서 약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LG전자의 옵티머스G 프로도 지속적으로 수출 시장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팬택도 일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올 하반기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의 신제품 출시가 잇따르고 이 제품들이 전 세계 시장에 지속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이미 전 세계 이통사들과 바이어들은 한국산 스마트폰의 출시일을 가늠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LTE-A 서비스의 상용화로 관련 시장이 활성화되고 이를 노린 단말기 제조사들의 출시가 경쟁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삼성전자가 LTE-A 지원 단말을 출시한 데 이어 해외 통신사들이 앞다퉈 LTE-A 서비스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휴대폰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산업연구원은 스마트폰의 IT제조업군의 수출 호조로 내수 증가도 점쳤다. 이는 국내 이통사들의 LTE-A 상용화와 시장 수요를 충족시켜줄 다양한 단말 출시 때문이다.
◆자동차, 성장세 이어 수출경기 이끈다
올 하반기 수출경기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점차 회복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상반기 노조 파업으로 인한 공급 불안이 해소되면서 자동차 분야가 하반기 수출을 주도할 것이라는 게 산업계의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하반기 자동차 수출이 6%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도 하반기 자동차 수출이 호조를 보이며 올해 총 3.8%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상반기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판매량을 나타내며 선전했다.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따르면 내수는 2.7% 감소했지만, 수출은 7.3% 증가했다.
현대자동차는 해외에서 205만8189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1.2% 늘었으며, 쌍용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8.4%와 5.4% 수출이 증가했다. 한국지엠은 0.4% 소폭 줄었으며, 르노삼성자동차는 38.2%의 감소세를 보였으나 수출 물량이 많지 않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처럼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적극적인 신흥시장 공략이 큰 도움이 됐다. 현대·기아차 역시 브릭스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을 이끌었다. 특히 중국은 대도시의 자동차 규제 정책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주력 수출국인 미국 시장도 최근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수출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자동차업계는 하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이 평균 1500만대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의 꾸준한 제품 품질 향상도 한몫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일본차에 뒤지지 않는 품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하반기 신차 효과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인 타이어 수출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타이어 제품의 원재료인 천연고무 등의 가격 약세가 지속되고 있어 올해 상반기의 판매 호조가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석유화학, 소폭 회복 흐름 이어질 듯
석유화학 산업의 하반기 수출은 소폭의 회복 전망이 우세하다.
본격적인 경기 개선은 어렵지만 성수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이러한 전망의 근거다. 다만, 중국 수출시장의 수요 회복 가능성과 석유화학 수출 리스크로 부각된 엔저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연구소 및 업계 등에 따르면 대체로 계절적 성수기 진입에 따라 상반기 소폭의 회복을 보였던 석유화학 수출경기 흐름이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경기의 관건은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중국에 달렸다. 중국은 지난 5월 수출증가율이 전달 14.4%에서 1.0%로 급감하는 등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으로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회복은 불확실하다. 5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3년 내 최저수준을 기록했기 때문에 중국 신정부가 하반기 내수 활성화를 위한 부양책에 나설지가 관전 포인트다.
엔저 리스크는 시장의 우려만큼 크지는 않아 보인다. 일본과 겹치는 수출경합제품이 많지 않고, 그나마 경합도가 높은 범용제품은 일본이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있어 엔저 영향이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화학기업들은 오히려 엔저로 인해 원료 수입 부담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국내 대기업의 경우 전자재료사업에서 일본산 원재료 수입비용 감소 효과도 보고 있다.
하지만 엔저가 장기화할 경우 전방산업인 자동차, 전자산업 등에서부터 이어지는 연쇄 부진을 겪게 될 우려는 있다.
해외 바이어와 주재상사들의 주문 동향을 토대로 수출경기를 예측한 '코트라-세리 수출선행지수'에서는 3분기 석유화학 수출이 전분기 대비 소폭 개선될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산업연구원은 하반기 석유화학 수출이 6.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석유화학제품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성장률 둔화와 자급률 진전, 중동산 저가제품의 공급 증가로 인한 가격경쟁력 저하는 수출을 제약할 것"이라면서도 "전반적인 수출경기는 완만하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며, 비에틸렌 제품 등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엔저 영향 미미…그러나 안심하긴 일러
오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업계에서 일본의 엔저 영향은 아직까지는 크지 않은 모습이다.
다만 LNG선 등 일본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고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올 하반기에 6조원에 달하는 최대 16척의 LNG선이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는 러시아의 '야말 프로젝트' 등에서도 엔저를 등에 업고 최근 가격경쟁력을 높인 일본 조선업체들이 공격적인 수주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LNG선은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전체 발주량보다 많은 30척 이상이 될 것으로 보여 일본 조선업체들은 경영 보폭을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조선 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일본 조선업체들이 수주한 규모는 140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의 수주량인 420만CGT의 3분의1에 불과하다.
일본선박수출협회(JSEA)에 따르면 지난 3월 일본이 수주한 선박은 전달 대비 10배가 높은 49척으로 최근 무섭게 수주량을 확대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엔저에 따른 영향력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일본이 중국과는 달리 높은 선박 건조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이전보다 적극적인 경영에 나설 경우 우리나라 조선사들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바닥을 보이고 있는 선가로 인해 수익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조선업체들로서는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일본 조선사들의 주요 건조 선종인 벌크선이나 탱커, 중형 컨테이너선 등이 우리나라 중소 조선소들의 선종과 겹치는 만큼 엔저에 따른 타격은 대형 조선소들보다는 중소형 조선소들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를 비롯한 대형 조선업체들이 늘어난 플랜트 수요 등으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중소 조선업체들은 선가 하락과 발주량 감소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어 하반기 전망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철강, 중국·일본·인도 사이 '넛 크래커'
철강업계는 한국의 주력산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수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정된 수요에 비해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제품 물량들 속에서 사실상 '치킨게임'(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세계 경기침체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의 조강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5월 세계 주요국 조강생산량은 전년 동월 대비 2.6% 증가한 1억3630만2000t을 기록했는데, 아시아지역 조강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7% 증가한 9097만6000t으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체적인 증가를 주도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조강생산에서 아시아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월 64.8%에서 올 5월에는 66.7%까지 상승했다. 전 세계 제조업 사업장이 아시아 국가에 몰리면서 철강제품 수요 또한 가장 높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긴 하지만 제조업 생산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 과잉 현상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달 한국은 주요 조강생산국가 중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해 7.1% 줄어든 553만t을 기록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업체들이 사업장 정비를 조기 단행하는 한편, 재고 조정 차원에서 생산량을 줄여 가격 인상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다른 경쟁국가들은 오히려 생산 확대 전략을 밀고 나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조강생산국인 중국이 가장 상승폭이 높은 7.3%를 기록하며 6703만4000t을 생산해 지난 3월에 기록했던 올해 최고 생산량을 경신했다. 엔저를 배경으로 수출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본도 4.3% 늘어난 962만2000t을,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인도도 1.5% 증가한 673만t을 기록했다.
이렇게 생산된 물량은 자국 내수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대부분 수출 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저가 철강재와 엔저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고가 철강재 등이 출하되면서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한국 제품도 상당부분 이들 국가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강제품 수출액(잠정치)은 전년 동기 대비 11.9% 줄어든 163억7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그나마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 전략으로 선회해 이뤄냈다는 점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수요 산업의 위축과 함께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 왜곡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수출 시장 여건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딜레마다.
◆기계산업, 수출 목표 달성 어려울 듯
국가 산업의 기반인 기계산업은 엔저 현상이 심화하면서 수출 시장 개선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아 올해 수출 목표 달성은 어려울 전망이다.
기계산업진흥회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계산업은 연초 엔·달러 기준환율을 80엔으로 보고 올해 수출 목표액을 521억 달러로 설정했다. 하지만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 진흥회는 엔·달러 환율이 105엔이 될 경우 당초 전망치에 비해 약 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금액으로는 약 1조7000억원, 달러화로는 15억2000만 달러에 해당한다. 한때 103엔을 넘어섰던 엔·달러 환율은 현재도 100엔대를 이어가고 있어 해외시장에서 심각한 가격경쟁력 상실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 상반기 수출입 실적(잠정치)에서 일반기계산업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한 239억6600만 달러에 머물렀다. 4월까지는 조선 수출을 제외할 경우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왔으나 이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진흥회가 매월 발표하는 기계산업 동향 최근호를 보면 심각성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4월 말 기준 건설·농기계 및 공작기계와 섬유, 냉동공조, 반도체장비 등 다른 산업의 설비를 제공하는 기반인 일반기계산업은 엔저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으며 수출이 약 2%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기계산업 수출은 수주를 근거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올 상반기 수주 활동이 어려웠음을 의미한다. 수주 부진은 생산 및 출하 감소로 이어지며 전체적인 업황을 불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실제로 중동, 동남아, 일본에 크레인·호이스트를 수출하는 국내 한 기업은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상승으로 일본 기업들에 수주를 빼앗기기도 했으며, 일본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들도 바이어들로부터 턱없는 단가인하 요구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4월까지 기계품목의 대일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7%나 줄었다.
기계업계 관계자는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시장 수요가 위축되고 일본과의 해외시장 경쟁 격화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금형기계의 경우 지난해 일본 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20% 우위에 있었으나 (엔저로 인해) 지금은 가격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진흥회와 관련 업계는 상반기에 부족했던 수주 활동을 만회하기 위해 하반기에 해외 박람회 참가 및 바이어 미팅 등 다각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중국과 유럽 등 신시장 경기도 둔화 또는 위축되며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연간 수출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