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공유를 통해 분쟁 및 소송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고 신기술 개발에 매진해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쟁 체제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국내 기업들 간의 공조를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관련 포괄적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3일 밝혔다.
양사가 보유한 반도체 관련 특허를 제약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계약기간과 로열티 수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계약 체결로 양사는 소모적인 분쟁 대신 기술 혁신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돼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1위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 통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5.4%로 1위, SK하이닉스는 16.6%로 2위를 기록했다.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시장의 52%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세철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양사가 분쟁을 예방한다는 큰 틀에서 특허 공유에 합의한 것 같다”며 “양사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 공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게 돼 리스크를 없애고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지난 2~3년간 논의를 진행한 끝에 최종 합의를 이뤄냈다. 반도체 분야 특허만 수만여건에 달한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벗어나 낸드플래시를 집적해 만드는 SSD와 시스템 반도체 등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이 달라진다.
SSD와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경우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한 발 앞서 있어 이번 특허 공유가 SK하이닉스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관련 특허는 무상으로 공유하되 그 외의 특허는 일정 수준의 로열티는 제공하는 쪽으로 계약이 체결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양사는 언급을 자제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특허를 활용해 사업을 확대할 상황은 아니다”며 “최근 램버스와의 소송 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모적인 특허 분쟁을 없애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도 “대승적인 차원의 합의로만 봐달라”며 말을 아꼈다.
도현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시스템 반도체 관련 매출이 1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만큼 당장 삼성전자의 경쟁상대가 될 수는 없다”며 “진짜 중요한 기술은 특허 등록 전에 양산 체제를 갖추는 경우도 많아 특허 공유가 실효를 거둘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합의가 국내 기업들 간의 공조 체제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특허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역시 양사의 특허 공유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