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나라님과 프레지던트

2013-04-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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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송지영 워싱턴 특파원= 이달 초로 잡힌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으로 미주 한인사회도 분주하다. 특히 워싱턴 DC 교민들은 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하고 교민 행사를 할 예정이어서 더 반가운 마음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한인들이 대통령을 대할 때 갖는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예전 조선시대 때 ‘군사부 일체’ 유교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한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라를 통치하는 ‘나라님’으로 모신다. 대통령의 한자어 뜻도 ‘큰 통치를 하는 수령’이다.

지난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과 환담했다. 인사할 때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꼿꼿이 서서 한 손으로 악수했다고 해서 한국 언론에서 시쳇말로 씹었다. 아무리 위아래 크게 안 따지는 미국 사람이라지만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직후 미국 일부 언론에서도 게이츠 회장의 ‘한 손 바지 주머니 악수’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 구설 소지가 있다고 맞장구쳐주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대통령과 인사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국내외에서 충분히 전달됐다.

이러한 해프닝에서도 한국인들이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지 잘 알 수 있다. 500억달러 규모의 재산을 지닌 전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면서 컴퓨터 시대의 가장 상징적 상품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시자라도 한국 대통령에게 그렇게 인사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대통령은 높은(!)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인사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미국과 미국인을 대표하는 사람은 프레지던트(president)다. 대통령으로 번역하지만 어원이나 뜻은 전혀 다르다. 회의나 모임을 주재하는(preside)에서 온 말이다. 즉, 통치의 개념보다는 ‘방향을 잡아 이끄는 대표’라는 뜻이 강하다.

나라마다 역사와 정치적 배경, 문화가 다르므로 어느 한 쪽만 옳다고만 할 수 없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 예절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요즘같은 글로벌 시대에 예절같은 관습을 너무 따지다보면 정작 챙겨야할 실속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해서 어떤 사업적인 이득을 보려고 대통령을 만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도 그 바쁜 일정 속에서 그를 만난 일이 당장 어떤 정치적인 실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편하게 담소하고 역사에 남을 한 장의 사진에 찍혔다고 생각한다.

백악관의 오바마 대통령 집무실에는 큰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흑인 어린 아이가 오바마 대통령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아이 키가 턱없이 작으므로 오바마 대통령의 허리는 90도 이상 구부려졌고 머리를 아이의 손 높이에 맞춰주었다. 익살스러운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 모습도 잘 잡았다. 아이가 오바마 대통령도 자기와 같은 흑인인지 머리카락을 만져보는 장면이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미국의 행정부와 국민과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고 본다. 누가 누구를 모시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존중하면서도 격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어린 아이가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고 생각해보자.

한국의 유교적인 전통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게이츠 인사 게이트(!)를 꼭 꼬집었어야 했나 싶다. 한국과 한국민을 잘 이끌게 박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 주변에서 너무 대통령을 모시면 국가와 지도자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잘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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