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 위해 26∼27일 방일을 추진했으나 양국간 분위기 악화로 방문을 22일 전격 취소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조심스럽게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모색 중인 상황에서 수차례에 걸친 자제 요청에도 불구,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등 일본 내각 각료 3명이 지난 20~21일 잇따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양국 장관 회담은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한·일관계가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중,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안정화와 북한 위협문제 등을 논의하기 일본측에 제안해 성사된 회담이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정부는 일본의 총리와 외상, 관방장관 등 톱3에 해당되는 관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경우 양국관계를 고려해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그러나 이번 부총리가 신사를 참배한 것은 양국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아소 부총리는 대통령 취임식 특사로 왔고 차기 총리도 노리는 사람"이라며 "아소 부총리가 (신사에) 간 것은 굉장히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회담을 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효과 있는 회담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며 윤 장관의 일본 방문 취소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에 우리 정부가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 취소로 대응한 것은 지난해 계속됐던 일본의 강도 높은 도발로 과거사 문제에 더 민감해진 국내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미국 방문에 이어 일본이 아닌 중국을 먼저 찾을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런 정서와 관련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일본의 7월 선거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현실적으로 일본을 금방 가기는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일러도 올 가을이 되어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현재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직전하는 중"이라며 "그 깜빡이 색깔이 약해진 것 같긴 하지만 그 길은 중심으로 가고 있다. 왼쪽으로 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잇단 일본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를 관리하고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지금 한·일간에는 북한문제도 있고 아베노믹스도 있다"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