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Michel Basquiat (American, 1960-1988) DESMOND 1984 Acrylic on canvas 218.4 x 172.7 cm ⓒ 2013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ARS, New York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낙서도 예술'로 등극시킨 장 미셸바스키아(1960~1988)가 있다. 그는 '수프 깡통도 예술'로 끌어올린 앤디워홀과 당당히 전 세계 현대미술시장 경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다.
바스키아의 수식어는‘검은 피카소’. 80년대 미국 미술계를 풍미한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천재 미술가로 꼽힌다.
22세에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최연소로 참가했고 이후 앤디 워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와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1985년 뉴욕 타임즈 표지에 실려 주목받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이민자 가정의 혼혈아로 태어난 그는 코카인 중독으로 28세에 요절했다.
7세때 교통사고로 비장을 들어낸 것도 화가가 될 운명이었다. 당시 엄마는 병원에 있는 그에게 의대생이 보는 <그레이의 해부학> 책을 선물했다.
이후 다양한 해부학 서적들을 탐독했고 그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과 폴리쳐의 예술적 해부학의 내장 기관 드로잉 이미지들을 향후 회화에 차용했다. 비장(Spleen)이라는 단어는 종종 그 자신을 나타내는 의미로 등장한다.
해부학은 전통적인 화법에 구속 받지 않고 신체 여러 부위를 그려낸 그의 그림의 원천이다.
Jean-Michel Basquiat (American, 1960-1988) Untitled (Lung) 1986 Acrylic on wood 244 x 140 cm ⓒ 2013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ARS, New York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
부모는 7세때 이혼했다. 만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바스키아는 15살 집을 나와 17살이 되던 해 영재들을 위한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이후 시티애즈스쿨에서 그래피티 그룹 ‘SAMO’(Same Old Shift.‘흔해 빠진 쓰레기’의 줄임말)를 결성, 스프레이와 오일 크레용으로 뉴욕 거리 곳곳을 낙서로 도배하고 다녔다. 또 뉴욕현대미술관(MOMA) 앞에서 자신의 그림을 그려 넣은 티셔츠, 엽서를 팔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흑인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하며 자란탓에 '저항 정신'이 강했다. 자전적 이야기나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야구선수 행크 애런, 음악가 찰리 파커 같은 흑인 영웅,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판 등의 주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반면 바스키아의 말기(1887~1988)작품은 죽음이 담겨있다. 우울하고 상처받고 어두운 인물 이미지 투성이다. 당시 마약남용과 유명세에 따른 인간관계의 고민과 앤디 워홀의 죽음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천재적인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회고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06년 바스키아 회고전을 열었던 국제갤러리는 이번 ‘장 미셸 바스키아 전’에서 그의 대표작 18점을 선보인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낸 바스키아의 삶이 담긴 원조 '낙서화'의 강렬한 매력을 만나볼수 있다.
거친 붓질, 화려한 색감등 그가 왜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지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전시는 3월31일까지. (02)735-8449
Untitled (Hand Anatomy) 1982 Acrylic, oilstick and paper collage on canvas with tied wood supports 152.4 x 152.4 cm ⓒ 2013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ARS, New York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