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대준 기자)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사진)은 영원한 철인이다. '우향우' 정신을 포스코에 남겼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소 건립 초기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과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건설에 착수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재를 하루라도 빨리 생산해야 했고, 건설비도 줄여야 했다.
이후 우양우 정신은 회사의 사풍과 전통을 형성하는 원류가 됐다. 포스코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신조어이며, 기업문화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한국 정부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초의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을 세운 것은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이다. 자금 부족과 정국 혼란 등으로 다섯 차례에 걸친 일관제철소 건설 시도는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포항제철소 건설 계획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고, 일본으로부터 차관과 기술을 제공받는 방법으로 수정돼 1970년 4월 1일 조강 103만톤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했다. 3년 2개월만인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가 준공됐다. 첫 쇳물이 쏟아지는 역사적인 순간 박 명예회장이 옆에 있었다.
박 명예회장은 포항제철을 창업 25년이란 짧은 기간에 굴지의 철강업체로 키워냈다. 한국 철강업계의 명실상부한 대부이자, 세계철강업계의 거목이다.
1992년 10월 5일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사퇴서를 제출했다.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거절했다.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이후 협력사들로부터 3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한동안 외국을 떠돌기도 했다.
1997년에는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해 총재가 됐다. 김종필과 함께 김대중의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선을 지원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국무총리를 했지만,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으로 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