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한도 2.4조 달러 늘리고, 지출 2.4조 달러 줄이고
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과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가 이날 밤 도출한 합의안은 두 단계에 걸쳐 부채한도를 2조4000억 달러 늘리고, 10년간 2조4000억 달러의 지출을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부채협상 합의 소식을 전하며 특별위원회의 재정지출 감축폭을 축소하고 싶었지만, 합의안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합의로 우리 경제를 뒤덮었던 부채한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의 구름이 걷혔다"고 평가했다.
◇"재정감축 구체안 없어"…신용등급 강등 리스크 남아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미 워싱턴 정가와 월가 안팎의 분위기다. 미 의회가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2조4000억 달러 줄이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지 않아 언제든 정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적자 감축 부분은 당장 1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상하원 표결과정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부채한도 증액안에 포함된 정부지출 감축은 취약한 미국 경제상황을 감안해 갑작스럽게 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미국의 부채 규모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70%에 달하고 있지만, 정부 지출의 40%를 차입에 의존하고 있는 재정구조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로이터는 이날 미국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지출을 대폭 줄여 취약한 재정구조를 개선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미국이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과 무관하게 지출 축소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트리플A(AAA)' 신용등급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울포크 뱅크오브뉴욕멜런 수석 투자전략가는 "미 부채협상 합의안은 단기적인 대책에 불과하다"며 "신용평가사들이 찾고자 했던 장기적 해법은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정감축 실물경제 회복 저해…'더블딥' 논란일 듯
일각에서는 최근 가뜩이나 경기회복이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재정감축에 속도가 붙으면 미국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주 미 상무부는 2분기 성장률이 1.3%에 그쳤으며 당초 1.9%로 발표한 1분기 성장률도 0.4%로 낮췄다고 밝혔다.
톰슨로이터와 미시간대가 발표하는 소비자 신뢰지수도 영향을 받아 6월 71.5이던 것이 7월에는 63.7로 급락했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도 2분기에 불과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에서는 오는 5일 발표될 7월 실업률이 전월과 같은 9.2%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0에서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는 경기부양을 위한 실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비드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최근 "추가 부양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ABC방송에서 "부채협상 타결은 경기에 대한 가계와 기업의 신뢰를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재정지출을 줄이면 실업률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높아지고, 불평등의 정도도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