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뢰훼손’, 감독자 엄중한 처벌 필요
부산 저축은행 사태는 금감원 최대의 위기로 돌아왔다. 김종창 전 원장이 명의신탁 의혹으로 검찰의 소환이 입박해지면서 2003년 나라종금 로비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된 이용근 전 금감원장, 2007년 김흥주 로비사건으로 소환된 이근영 전 금감원장에 이어 세번째로 검찰과 인연(?)을 맺게 됐다. 특히 이번에는 올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금감원 전·현직 직원이 7명을 넘어서 국내,외 금융정책 신뢰에도 상당한 손상을 가져올 전망이다.
또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 저축은행 비리 연루돼 구속되면서 감사원장 출신인 김황식 총리도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특히 정부 감사기관의 맏형격인 감사원이 금감원의 비리 커넥션에 연루되면서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자체적 부정감시 체계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사원의 경우 소수의 인원으로 포괄적인 기관감사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문가 격인 금감원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저축은행 비리 고리로 연결됐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처럼 감사원의 경우 금감원과 통하는 몇몇의 인원만 포섭하면 정부당국의 눈을 가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단일 회선의 구조를 혁파함과 동시에 이들 실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선행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의 금융감시 체제의 경우 담당자의 직책 부여시 임무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제대로 책임을 묻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국 금융감독시스템의 경우 내부직원이 잘못하면 전재산을 몰수할만큼 엄격하다. 특히 책임을 강하게 묻는 장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책’금융위와 ‘감독’금감원 분리해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태생적 이해상충 구조가 적극적인 금융감독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금감원은 금융산업을 육성하는 정책기능을 지닌 금융위의 하위기구로 존재하면서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감독기능과의 상충 가능성을 노출해왔다.
이 때문에 현재 금융감독체계 속에서 견제와 균형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무뿐만 아니라 금융위가 상위로 있는 이 같은 구조하에서는 직속상관이 실질적인 인사권한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조직 질서가 와해되고 연이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미국기관의 감사와 자문업무를 해왔던 조영 앤트롭J인베스트먼트그룹 대표는 “직속상관의 인사권한을 잘 지켜주는 문화가 미국 조직의 질서이며 힘의 원천”이라고 평가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인사권한을 월권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토가 있기 때문에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도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금감원은 취업제한기간연장, 재산등록 직원 확대 등의 개선안을 내놓으며 태스크포스 만능주의에 빠질 것이 아니라 내부직원이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금감원도 인사제도를 유연하게 운용해 외부 전문인력들이 들어와 정착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원승연 명지대 교수은 “통합화된 금융감독기구는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저축은행 사태의 근원은 금감원 직원 1~2명의 비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감독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통합해 금융정책을 맡고 금감원은 금융감독과 집행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분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원 교수는 또 “그보다는 승진 중심의 내부 조직이나 인사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 새로운 유인체계를 만드는 등 내부적인 혁신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은·예보 포함 다중 감독체제로 바꿔야
금감원이 금융권에 대한 독점적인 조사감독권을 가졌기 때문에 저축은행의 감독 부실과 일련의 비리를 불렀다는 비판도 많다.
독점적 감독권은 결국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낙하산 인사를 불러왔고 '누이좋고 매부좋은' 시스템은 저축은행의 부실감사를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의 감독권 조정 필요성이 다양하게 제시시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 한국은행에 단독검사권을 부여하는 한은법 추진이다.
6월 국회 논의와 김중수 한은 총재의 지지 발언에 힘입어 한은법은 금감원의 부패를 견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금감원의 감독권을 한국은행이 일정부분 나눠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견제기능을 할 수 있다는 요지다.
한은의 감독원에 대해 학계에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채희율 경기대 교수는 “현재 예금보험공사나 한은이 가진 공동검사 권한을 강화해 실질적으로 잘 운영되도록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굳이 법까지 바꿀 필요는 없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땐 한은이 사실상 한시적 출자자”라면서 “궁극적으로는 한은에 단독 검사권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특히 론스타 사건을 예로 들며 “이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이를 견제한 수단이 없었기 때에 발생했다”며 한은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금감원과 예보, 한은이 교차검사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단일 주체에 의한 검사보다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교차검사를 통해 금융계의 ‘검사 피로’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금융감독 결정에 소비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성구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최근 금융감독체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소비자보호 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금융소비자 참여가 제한돼 의견을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에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를 분리하는 쌍봉형(Twin peak) 모델을 기초로 별도기구 설립보다는 소비자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금융감독기구 거버넌스 문제를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