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측의 잇단 거부 반응에도 정부가 최근 남북 간 실무접촉을 통해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을 북측에 직접 설명한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초청 카드가 여전히 유효한 점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지난 8일 독일에서 김 위원장 초청의사를 밝혔을 당시만 해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립서비스’에 그칠 수도 있었던 이 대통령의 제안이 실제 남북 접촉으로 이어진데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대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일각에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정상화의 단초가 마련되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이번 실무접촉과 관련해 시기와 경로는 물론, 이미 알려진 이 대통령의 제안 외에 어떤 내용을 추가적으로 설명했는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며 입을 닫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을 살펴볼 때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가시화할 경우 경제적 지원 등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앞서 이 대통령은 17일 보도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도 “난 북한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게 체제를 지키는데도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이 대통령은 “북한이 중국·베트남과 같은 형식의 개방을 하면 경제적으로도 빠르게 자립하고, 특히 대한민국으로부터도 더 큰 협력을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점을 어떻게든 북한에 설명코자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2차 핵 안보 정상회의가 열리는 내년 3월까진 아직 시간이 많다”며 “남북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서두를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제안과 관련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북측과의 대화의 '틀'을 유지해나가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이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이 '남북 비핵화 회담→북미대화→6자회담'으로 가는 3단계 안으로 가기 위한 시작점에 해당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남북대화에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시각도 여전하다.
한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핵 6자회담 재개와 관련, “우린 (북한과) 양자대화도 할 준비가 돼 있으나 일단은 남북관계 개선이 있길 원하고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북한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