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전 재정부 차관 |
행정고시 17회인 박 전 수석은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옛 경제기획원(EPB)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뛰어난 암기력으로 영어와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6개 외국어에 능통하고, 경제학과 법학, 산업공학 등 3개의 석사 학위를 보유하는 등 학구파이기도 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 퇴임 강연을 러시아어로 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한 일화도 있다.
달변에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식물학과 중국어에도 조예가 깊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어 업무장악력이 높으며, 원칙을 중요시하면서도 일이 막힐 때는 돌아갈 줄 아는 융통성도 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 시절 노무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종합부동산세가 시장경제와 배치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법제화 과정에서는 정부의 논리를 차분하게 집행했다. 경제정책을 놓고 기자들과 사석에서 장시간 토론하는 소신도 보였다.
재정부의 한 국장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후배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선배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석 국장인 경제정책국장을 2년5개월간 최장수 역임하면서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모태인 경제자유구역법과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완화 등 개혁작업으로 개방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시장주의자 모습도 보였다.
이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통령 경제정책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특히 최근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한 ‘PK(부산·경남) 달래기 카드’로 MB정부 차기 재정부장관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큰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 전 수석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부산 경제 현안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직·간접적인 조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업무 스타일 때문에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2009년 1월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부당대출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감사원이 조사에 들어가자 교체됐다. 이후 박 전 수석은 미국 스탠퍼드대 초빙교수로 다녀왔다. 최근에는 미래에셋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대학시절 때부터 공을 세운 뒤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의 `공성신퇴(功成身退)`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