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정동에 거주하는 김재하씨(가명)는 최근 자동차를 사며 이용한 할부금융의 납부액을 농협계좌에서 빠져나가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달 돈이 제 때 빠져나가지 못해 연체가 됐고 그 결과 연체료 납부에다 신용등급까지 떨어졌다.
농협 거래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음에도 농협이 거래자 보호를 등한시 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카드대금이나 할부금 납부가 연체됐음에도 농협이 사후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농협은 고객들이 피해신고를 한 후에야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소극적인 업무태도로 일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피해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총 1404건(5월 4일 오후 6시 기준), 보상금액은 2200만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농협 고객들은 박씨나 김씨처럼 피해보상 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등 피해보상 요구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 피해규모를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특히 고객이 자신의 피해사례를 직접 입증한 후 신고하는 구조여서 농협의 소극적인 대응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다.
박씨는 "바빠서 장 볼 시간 조차 없는 영세자영업자에게 가게 문을 닫고 영업점을 방문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농협 측이 전적으로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임보상 요구를 따로 해야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씨는 농협이 카드대금 유예대상을 '카드결제일이 4월 22일부터 5월 4일까지 고객'이라고만 알린 가운데 기업카드 고객들은 이 기간에도 예외없이 청구돼 피해를 본 경우다.
기업카드를 쓰는 박씨는 인출 사실을 안 즉시 농협 콜센터에 전화해 항의했지만 해당 직원은 돈을 빼간 이유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대신 더 이상 돈을 인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돈을 더 빼가 결국 고객에게 거짓말만 하는 꼴이 됐다.
김씨는 농협 사태 이전에는 할부금융 납부액 등을 한번도 연체해 본 적이 없는 상황. 하지만 지금은 농협의 결제업무 마비로 연체료까지 물고 신용등급마저 강등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농협은 이에 대해 뒤늦게서야 해명에 나섰다.
우선 박씨의 경우 개인카드와 달리 기업카드는 카드론이나 선결제 서비스 등이 없어 평소와 같이 카드대금을 청구했다며 고객에게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농협 관계자는 "유례없는 전산망 마비 사태로 워낙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조직 내부적으로도 정보 공유가 잘 되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농협은 현재 타금융사에 농협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고객들이 할부금융 납부액 등을 연체했을 경우 정상 참작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해당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어서 100% 피해보상을 확신할 수 없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결국 김씨처럼 신용등급이 떨어져 향후 자금대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 같은 피해는 고스란히 농협 고객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