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요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8일 경기도 안양경찰서에 따르면 최고은 작가는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 석수동의 월셋집에서 이웃 주민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숨지기 전 이웃 주민의 집 문에 ‘며칠새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집 문좀 두들겨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힌 쪽지를 붙여 논 것으로 밝혀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안양시 만안경찰서 측은 최 씨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치료도 못받고 냉방에서 쓸쓸히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애도의 뜻을 밝혔다. 영화노조는 8일 성명서를 통해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은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이웃에게 음식을 부탁하는 쪽지였다니 말문이 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전했다.
또 "창작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 시스템과 함께 정책 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스태프들이 생존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즈음인 2000년도의 연평균 소득은 337만원, 10년이 지난 2009년도 연 평균 소득은 623만원으로 조사됐다. 월급으로 치면 52만원이 채 되지 않는 액수로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이라며 열악한 제작 환경에 대해 비판했다.
네티즌들은 물론 연예인,영화인들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속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너무 안좋다"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려온다"는 글을 남겼다.
아이유 '좋은날' 작사가 김이나 역시 트위터를 통해 "누리고 사는게 많아 가급적 침묵하려 한다. 무언가를 애도하기엔 삶이 죄스럽다"며 최고은 작가를 향한 애도의 글을 전했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제작한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도 "눈물이 난다"며 애도의 뜻을 전한 데 이어 심영섭 영화평론가도 "적어도 모든 사람이 먹고는 살 수 있다고 믿는 이 나라에서 서른 갓 넘긴 그녀는 얼마나 외롭게 죽어갔을까. 마음이 아프고, 그녀의 명복을 빈다"라고 최씨를 추모했다.
네티즌들은 "가슴 아픈 현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눈에는 눈물이…양손에는 주먹이 우네요…참으로 재능있고, 참한 분이…" "최고은 작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시다니…안타깝네요" 등 글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젊은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 스타 배우들의 개런티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시나리오 작가나 제작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는 아직도 열악하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한 중견 영화제작사 대표는 "문화 예술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관건인데 이를 담당하는 작가, 감독들에 대한 처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라며 "배우 위주의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영화계 전반에 대한 고른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편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최씨는 단편영화 ‘격정소나타’를 연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이후 시나리오가 영화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지난 1일 충남 연기군의 한 장례식장에서 화장됐고 학교 동문들은 추모식을 열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