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으로 인한 순간 과부하도 빼놓을 수 없는 정전사고의 원인이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한국전력과 업계가 송전선로 노후화에 초점을 두고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산단에 입주한 기업 가운데 피해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GS칼텍스는 변전소로 가는 송전선로에서 폭발이 일어 전압이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전기 공급업자인 한국전력은 전기를 전달하는 과정(전선계통)에는 문제가 없고 개폐장치에 이상이 생겼다는 입장이다.
송전과 배전, 변압 등 전력설비 시설이 노후화하면 전력품질과 수급 안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전력설비 관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송전선로 노후화가 자주 거론되는 미국에 비해 국토가 좁아 ‘문제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정전사태의 주된 원인이 전선계통 이상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만큼 전력설비 관리보수가 절실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송.배전망 확충 시급
전력설비 관리보수 중 가장 시급한 게 있다면 바로 송전망 확충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송전선로나 배전선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즉, 발전소에서 변전소까지 가는 과정을 송전이라고 하고, 변전소에서 수용가(가정, 회사 등)까지는 배전이라고 한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일반 가정까지 전달하려면 매우 먼 거리의 송전선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송전선로의 저항과 마찰로 불가피하게 전력 손실이 발생하는데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전압을 높여야 한다. 바로 변전소와 변압기를 거치는 이유다.
따라서 전력설비와 거리가 먼 지역은 전력수급에 있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송전망 확보가 미흡한 일부 지역의 경우 평소 전력을 사용하는 데 크게 문제는 없다. 다만 여름철과 겨울철 전력수요가 급증할 경우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정전 확률이 높고 전력공급이 지속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안정된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해 깜빡거리는 경우다.
한전은 송전소 건설은 전력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공공인프라로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력계통 안정성을 위한 공공사업의 일환이라는 것.
한전 계통기획과 관계자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말초신경까지 잘 전달하기 위한 선로를 개척하는 것”이라며 “송전소의 경우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 지역은 보통 송전망을 지하에 묻지만 이는 지상에 설치하는 경우보다 적게는 7배, 크게는 14배까지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전소를 설치하는 지역 주민들은 땅값 하락,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경남 밀양의 경우 송전선로 건설 사업 허가가 난지 5년이 됐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제주도 내 해저연계선(HVDC) 설치 작업도‘뜨거운 감자’다.
의정부를 포함한 경기북부와 경기 화성, 인천 등 수도권 등지에서도 전력수급과 관련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다소비 업종은 더욱 민감
전체 전력사용량 중 절반 이상(53.7%)이 산업용 전력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송전망 노후화가 민간분야보다 산업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크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고품질의 안정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는 산업의 경우 요즘처럼 예비전력이 부족해 대용량 발전소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정전되거나 순간적으로 전력 공급이 불안해지면 수천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예비전력이 부족해지면 전력주파수와 전압조정이 어려워져 초정밀 기기를 생산하는 공장설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송전망이 노후화하면 전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많아지게 돼 업계는 비싼가격에 낮은 품질의 전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점검만 수시로 해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송전망 노후화 문제는 상시 관리체계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전압을 높여주는 변압기 관리도 절실하다. 한전은 보통 3~5년 단위로 변압기를 점검한다. 전력사용이 증가하면 변압기 운용 횟수도 그만큼 증가하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변전운영팀 관계자는 "변압기는 외부에서 측정해 내부상태를 파악한다"며 "기름가스가 유증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변압기 가스분석을 통해 이상유무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기존 설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설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전압이 높을수록 전력 손실이 적다는 점을 감안, 765kV와 같은 고압 계통연결 발전설비를 늘려야 한다.
한국전력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765kV 연결 실적은 2983MW로 오는 2013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반면 가장 낮은 전압인 154kV는 2007년 18749MW, 2008년 13395MW, 2009년 19849MW, 2010년 21283MW, 2011년 22140MW 등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전압이 낮은 송전망의 경우 일반 가정 등 배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규모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며 "고압인 765kV도 오는 2014년부터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압전선과 송전 철탑의 지중화 작업도 한전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고압전선과 철탑은 자연경관과 미관을 해치고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등 지역 주민들의 건강 이상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처럼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거나 반대로 올라가는 등 이상기후와 천재지변이 빈번하게 발생할 경우 전선 끊김이나 불완전 접속으로 심각한 송전 중단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에 산재해 있는 지상 고압전선을 지하에 묻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