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는 한국경제가 앞으로 80~90년대와 같은 고성장을 이루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동안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한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현재 기업 투자는 기존 사업에 대한 제한적 재투자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새로 번 돈은 은행에 쌓아 둔 채 이자만 받아먹고 있다.
◆ 실종된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
현재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1년 시설투자 계획 등을 조사한 결과 대규모 투자 확대는 없을 전망이다.
반도체ㆍLCD 등 지난해 호황을 누린 주력산업들은 이미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조선ㆍ운송장비 등 부진 업종들은 내년에도 투자를 크게 늘릴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대기업들은 올해 신규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기존 사업에 대한 설비 투자 등에 국한돼있다.
역대 최대인 153조원의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의 경우 올 한해 43조원의 신규 투자를 벌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규투자 대상은 반도체(10조3000억원)·LCD(5조4000억원)·유기발광다이오드(5조4000억원)·LED(7000억원)·TV(8000억원) 등 기존 주력 사업들이다.
현대자동차도 현대제철의 설비를 증설하고, LG그룹은 시설 및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생산량 증대를 위한 소극적 투자에 불과하다.
롯데그룹(M&A)·GS그룹(R&D)·포스코(자원개발)·두산그룹(R&D) 등도 기존 사업에 대한 재확장 의지만 밝힌 상태다.
◆ 은행권, 기업예금 이자 1년새 30%↑
기업이 새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벌어들인 이익은 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문제는 은행의 산업여신 증가세가 정체되는 상황서 기업의 예금증가는 은행의 이자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자칫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기업의 저축성예금 잔액은 총 233조4183억원. 이 예금에 연 4.0%의 금리를 적용할 경우 은행이 기업들에 지불해야 할 이자는 1년에 9조3367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9년 10월 저축성예금 잔액(174조6527억원)에 같은 금리를 적용할 경우 연간 이자 부담이 6조9861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년새 2조4000억원 가량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
반면 은행의 산업여신은 지난 2009년 10월 718조177억원에서 지난해 10월 723조3360억원으로 5조3183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은행이 신규기업여신을 통해 새로 벌어들이는 돈은 약 2659억원(대출금리 5% 적용시).
여신을 통한 수익이 수신에 따른 비용보다 적어, 결국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일구고 부를 창출해야 할 기업들이 예금주로 돌아서게 되면,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망가질 수도 있다.
◆ 정부주도의 제도적 지원 필요
의욕이 상실되고 심리가 위축된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가 지난 50년동안 정부 주도로 성장한만큼 기업들도 정부의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으며, 제도적 지원 등을 통해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돈이 된다 싶으면 무모할 정도로 뛰어드는 것이 기업인데 최근에는 투자심리를 자극할 만한 꺼리가 없다"며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할 만한 새 사업이나 투자세액 공제와 같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실 정부도 지난 2009년부터 새 먹거리 발굴을 위해 '녹색산업' 등의 비전을 제시했지만, 금융·산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양광전지의 경우 초기투자 비용이 높은 데 비해 수익률이 저조하고 향후 수익 창출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지난 1990년대 초반 정부가 벌였던 광통신망 구축과 같은 미래지향적 인프라 개발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계는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성장에 대한 요구와 의욕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경제 성장에 다시 불씨를 붙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