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1억원 급등, 목동은 "반전세도 없어"
10일 오전 찾아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 밀집 상가. 이 곳에서는 전세를 구하려는 수요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예약'까지 하고 왔지만 그 사이 가격이 오르면서 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D공인 관계자는 "지금은 집 상태가 이렇다 저렇다 따질 때가 아니다"며 손사레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밀려드는 수요자들로 인해 매일 북새통을 이루는 데다, 집을 보면 바로 계약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같은 시간 학군수요가 넘쳐나는 양천구 목동에서는 '반전세'마저도 동이 났다. 목동 신시가지 7단지 66㎡의 현재 전셋값은 2억2000만원으로 지난해 8월에 비해 3000만~4000만원 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현재는 보증금 5000만원, 월 100만원의 월세 외에는 물건이 없다. S공인 관계자는 "월세 물건도 단 3개 뿐"이라며 "계약을 서둘러야 이 마저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잠실 리센츠 109㎡형도 지난 8월에 비해 1억원 가량 올라 현재 4억5000만~5억원 선에 거래가 되고 있다. J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뛰어도 대다수 세입자들이 대출이라도 받아 그냥 살기를 원하고 있어 매물도 많지 않은 데다, 급등한 전셋값을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반전세라도 원하고 있어 집주인들도 반전세를 선호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매물은 거의 없고, 수요가 많아 미리 예약을 하고 물건을 보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중구 신당동 신당 푸르지오의 중소형 전세는 지난해 말 이미 자취를 감췄다. 인근 O공인 관계자는 "76㎡는 지난해 말 이미 다 소진돼 아예 물건이 없다"며 "135.3㎡만 남아있지만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 단독·다가구·연립에도 '반전세' 등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독·다가구·연립주택도 공급 부족 현상을 빚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세입자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의 일부를 월세로 돌려 받는 '반전세'가 등장하기도 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자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은 늘고, 급등한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이 늘어난 탓이다.
성북동에서는 69㎡ 빌라가 현재 1억6000만~1억7000만원에 전세가를 형성하고 있지만 집주인들이 속속 보증금 1000만원, 월 70만~80만원의 반전세로 전환하면서 세입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성북동 O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뛰면서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려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며 "전세값도 지난해 말에 비해 1000만~2000만원 가량 오른 데다, 반전세나 월세가 늘어나면서 기존 세입자들이 사실상 쫓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남동에도 다가구나 빌라 전세 물건이 씨가 말랐다. 연남동 B공인 관계자는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아파트 전세가 때문에 기존 아파트 세입자들이 빌라로 넘어오면서 빌라나 다가구 전세는 이미 씨가 말랐다"며 "한 달새 전셋값이 2000만원 이상 오르는 등 집주인들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경기 남부 지역의 전셋값도 강세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서울 강남권에서 시작된 전셋값 상승세가 강북, 분당, 용인으로 확산된 데 이어 최근엔 의왕, 광명, 화성, 안양, 파주시 등지로 번지는 모습"이라며 "새해 들어 한 주간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의왕, 군포, 용인, 산본 등지가 꼽혔다"고 말했다.
◆ 올 수도권 입주량, 전년 대비 60% 수준
이처럼 서민들은 전셋집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지만 올해 수도권 입주량 물량은 전년(17만 가구)에 비해 60% 수준인 10만 가구 가량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곧 다가오는 봄 이사철에는 전세난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매매시장 활성화 만이 현재의 전셋값 급등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지난해 입주물량이 적었던 것이 아님에도 전셋값이 크게 올랐던 것은 매매수요가 관망세를 보이면서 전세수요로 머물렀던 게 가장 큰 요인"이라며 "올해에는 입주량 뿐만 아니라 매매시장 활성화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매매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폐지,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등 수요자들이 실질적으로 매매에 나설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 팀장은 "우선 실수요자들이 내집 마련에 나설 수 있도록 DTI 면제를 연장하고, 다주택자 중과제를 폐지해 임대 시장의 활성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