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의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는 원래 ‘상처’라는 뜻이며, 일반 의학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인간의 기억은 나무와 같다. 삶에서 생겨난 작은 상처는 나무가 자라면서 껍질에 난 생채기가 아물듯 쉽게 잊힌다. 그러나 여린 나무에 충격을 줄 만큼 중대한 사건을 경험하면, 마치 깊게 패인 도끼 자국이 나무에 영구적인 상처로 남듯 지워지지 않게된다.
최근 대전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가 과잉행동집중력장애(ADHD)가 있는 학생을 때리고 인격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고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교실 열쇠를 분실한 학생에게 새 열쇠를 복사해 오라고 했지만 학생은 며칠째 열쇠를 가져오지 않아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과정에서 한 '막말'이 문제가 됐다.
잘못을 했다고 하는 학생에게 “잘못은 무슨 잘못이냐. 엄마가 와서 잘못했다고 해라. 돼지처럼 킁킁대지 왜 안하냐”는 등의 막말에 이어 학교에 찾아온 엄마에게도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말이지. 눈 그렇게 뜨지 마세요. 아이가 눈을 그렇게 뜨더니 엄마를 닮았나 보네”라고 했다는 것.
ADHD를 앓고 있는 학생과 그 엄마에게 교실과 그날의 기억은 아마도 깊게 패인 도끼 자국과 같을 것이다.
어느 한 문학평론가는 가난한 동무가 교사에게 체벌을 받다 그 체벌을 면하기 위해“미역 갖다줄 게 때리지 마세요, 김 갖다줄 게 때리지 마세요”했다고 했다. 매 맞던 동무에게 선생은 산림감시반원이나 밀주 단속을 나온 세무서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떨어진 매가 자신의 소행 탓이 아니라 '적절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환심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옛날 그 교실이 평론가의 자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실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