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 주변국들이 주도하는 현안이었다. 때문에 남북간 별도의 채널이 가동될 경우 협상 주도권 변화 등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구성됐지만 특별사찰과 군사기지 사찰 등에 대한 이견으로 남북 당국끼리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흐지부지됐다.
김영삼 정권 때는 제1차 핵위기에 따른 북.미간 협상을 지켜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경수로 건설에 참여하는 수준에 그쳤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남북간 화해 분위기에서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도 북핵 문제를 2003년 시작된 6자회담에 사실상 의존했고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논의하지 않으면서 보수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남북채널을 가동할 경우 북핵 협의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과 남북채널의 ‘투트랙’이 형성됨에 따라 핵문제에서 남북한의 역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남북간의 핵 채널이 가동될 경우 우선 1990년대 초처럼 남북이 고위급 회담을 개최해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논의하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2007년 ‘2.13 합의’에 따라 구성된 각종 실무그룹처럼 남북간 실무회의가 열리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입장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달 정부 업무보고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던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얘기한 것이고 특별한 협의 채널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반도에서 대화국면이 조성된 뒤에야 별도 남북한 협의 채널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결국 북한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포기를 먼저 요구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강력히 반발해왔고 핵문제를 비롯한 민감한 정치적 대화는 미국과 진행하겠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