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정은 기자) "토니 애버트 자유당 대표는 무서운 상대였음이 드러났다."
지난 21일 치러진 호주 연방의회 총선에서 줄리아 길러드 호주 집권 노동당 대표겸 총리가 개표과정이 70% 진행된 상황에서 라이벌 애버트 대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어제 자정을 기점으로 77%가량 개표 된 후 일시 중단된 총선 개표 결과에서 집권 노동당은 야당연합 보다 2표 밀린 70석으로 과반 획득에 실패한 상황.
이에 따라 '다크호스'로 떠오른 토니 애버트(53) 자유당 대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유세 기간에 새로운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노동당의 내분을 공격하는 한편 높은 세금과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데 주력해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애버트 대표는 보수주의자로 낙태, 배아줄기세포 연구, 동성 결혼 등에도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애버트 총리는 3세 때 호주인 부모가 시드니로 되돌아오게 되면서 호주생활을 시작했다.
시드니대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대학재학시절 학생대표를 맡는 등 일찌감치 정치적 감각을 키워왔다.
1983년 세인트패트릭신학교에 들어가 한때 사제를 꿈꾸기도 했고 특이한 행동으로 '미친 사제(mad monk)'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애버트는 시드니대 재학시절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가톨릭위클리'에 기고하면서 글 재주를 키워 결국 호주 전국지 디오스트레일리안 기자로 활약했다.
날카로운 필력을 과시한 그는 야당이었던 자유당 대표 존 휴슨 공보비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94년 시드니 와링가선거구에서 보궐선거로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하원의원시절 주로 교육, 노사관계 업무를 담당했으며 2000년 존 하워드 자유당 정부시절 내각에 합류했다.
하워드 전 총리는 그를 "열심히 노력하며 능률적인 인물"로 칭찬한 반면 노동당은 당시 그를 "폭탄 투척범"이라고 혹평했다. 노동당 공격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하워드 전 총리는 2003년 그에게 보건부장관직을 맡겨 의료개혁을 담당하도록 했다.
2007년 11월 자유당이 재집권에 실패하면서 야당 중진으로 물러났던 그는 2009년말 드디어 자유당 대표로 선출돼 9개월간 총선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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