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 차장/산업부> | ||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이것저것 물에 빠뜨려보는 일종의 ‘부력 실험’을 하다가 손 씻기를 깜빡 잊었던 것인데, 혼이 났다. 집안 어지럽히기, 거실 뛰어다니기로 혼이 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딴에는 억울했나보다. 책에서 배운 걸 복습(?)한 행동이 지적받을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력 실험’의 ‘타이밍’이었다. 하필 제 엄마가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부력 실험이라니….
최근 정부의 이른바 대기업 때리기 발언에 맞서 반박 발언을 내놓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도 억울했었나 보다.
“이번 개회사 작성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추진됐다. 최근의 대기업 역할론 등과는 무관하다”(7월28일). “한경연의 공식입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연구원에서는 2주 전에 칼럼 필자를 선정해 기고를 요청한다”(8월5일).
각각 지난 달 말 전경련 제주포럼에서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개회사에서 한 말과 이달 초 부설기관인 한경연에 실린 김인영 한림대학교 교수의 칼럼이 논란을 일으키자 전경련과 한경연에서 내보인 반응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정병철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부재중인 조석래 회장을 대신해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영 교수는 한경연 칼럼에서 “친서민정책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고 일갈했다.
모두 최근 정부의 친서민․친중소기업으로의 정책전환 흐름 속에서 재계의 속마음을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전경련과 한경연은 입을 맞춘 듯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화들짝 놀라는 한편 이후의 파장에 대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데 정말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전경련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본령으로 한다.
아무래도 주요 회원사인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회장단 기업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의 입장을 옹호할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경련의 500여 회원사는 대부분 국내 주요 그룹의 계열사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사의 주류가 대기업이 정부정책 방향과 관련해 대기업들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전경련은 애써 밝힌 입장마저 파장을 일으키자 “오해”라고 해명하면서 억울하다고 반응했다.
역시 타이밍이 문제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병철 부회장은 자신의 개회사 발언에 대해 기자들에게 해명하면서 “전경련은 그간 우리나라의 주요 현안을 꾸준히 언급해왔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 연장선상에 불과할 뿐인데,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 발언이 연이은 가운데 나와서 ‘오해’를 일으켰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식해명에서도 “말은 지금 했지만, 그 말은 ‘두 달 전’에 준비됐다(현재 상황과 무관하다는)”고 ‘타이밍’을 강조한 것이다.
전경련은 내년이면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사람으로 보면 지천명(知天命)의 세월이다.
하늘의 보편적인 진리를 알아채지는 못 해도, ‘말’의 ‘타이밍’ 정도는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전경련을 기대해 본다. 혹여라도 혼나는(?) 것이 두려워 말을 뱉어 놓고 분위기 봐서, 발을 뺀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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