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급발진 괴담’은 잊을 만 하면 우리 곁을 찾아온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금 왁자지껄할 뿐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괴담이 늘상 그렇듯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급발진으로 인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급발진 추정 사고를 경험한 벤츠 마이비 차량의 운전자 전 씨는 벤츠 본사로부터 차량 공식 주행 기록을 받았다. 시속 22㎞였다. 시속 22㎞로 안전을 자랑하는 고급 세단은 만신창이기 됐다. 브레이크도 밟았단다. 하지만 결국 운전자 잘못으로 결론났다. 전 씨가 20년 넘게 모범 개인택시 운전자였다는 건, 교통부·경찰청 장관의 표창을 받았다는 건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는 급발진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다. 100명이 넘게 모였다. 숱한 고생 끝에 국토부·소비자원·인권위에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모아 탄원서를 냈다. 법률사무소에도 갔다. 방송기자도 만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다. 업체 측의 대답은 한결 같다.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을 장착해 급발진 사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사고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정부도 마찬가지다. ‘모든 차량에 블랙박스가 장착되면…’ 이라고 말 끝을 흐린다. ‘한국판 CSI’ 국과수도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내린다. 지난 10년 동안 일반인이 제조사로부터 급발진 추정 사고로 보상해 준 공식 사례는 없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1심 승소 판례는 있다. 하지만 여지껏 모두 2심이나 결심에서 뒤집혔다.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경기도 포천에서 윤 씨의 오피러스 차량이 철근 콘크리트 옹벽을 부수고, 담장을 넘어 40~50m 가량 날아간 끔찍한 급발진 추정 사고가 일어났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경찰서에서는 윤 씨에게 사건을 종결짓자는 전화가 온다. 이쯤 되면 ‘급발진 괴담’은 한여름 밤의 귀신 이야기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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