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보험 및 증권 계열사에 퇴직연금을 몰아주는 관행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를 계기로 퇴직연금 시장의 무게중심이 은행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그룹 내 금융 계열사를 통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행위가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열사에 과도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시장의 공정거래질서를 해칠 수 있다"며 "퇴직연금을 둘러싼 논란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퇴직연금 몰아주기 행태에 메스를 대고 있다.
지난달 김상희 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12명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퇴직연금 운영액의 50% 이상을 금융 계열사를 통해 가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금융 계열사를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하는 사례가 많아 근로자의 수급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을 제고하기 위해 같은 계열사에 퇴직연금을 맡길 때 비율을 제한하는 법안을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생명의 퇴직연금 적립액 3조1000억원 가운데 70% 이상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로부터 흘러나왔다. 삼성화재도 올 들어 삼성그룹 내 5개 계열사에서 1200억원 이상을 유치했다.
동부그룹 계열인 동부생명과 동부화재는 퇴직연금에 교차 가입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늘렸다. 현대차그룹 계열 HMC투자증권도 지난 1월 그룹 내 계열사와 퇴직연금 계약을 맺었다.
은행권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대기업 계열 보험 및 증권사의 퇴직연금 영업이 제한될 경우 반사 이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험 및 증권업계가 기록 중인 퇴직연금 적립액의 상당 부분이 계열사 물량을 가져온 것"이라며 "계열사 간 밀어주기가 제한된다면 은행들의 퇴직연금 유치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퇴직연금 시장이 지나치게 은행 쪽으로 편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 중 은행 비중은 48%로 지난해보다 5% 가량 떨어졌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1위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한 보험 권역은 38%, 증권은 14% 수준이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미끼로 퇴직연금 가입을 종용하는 '꺾기'를 일삼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합리적인 선정 절차를 거쳐 그룹 내 계열사를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하는 것까지 제한한다면 퇴직연금 시장은 사실상 은행들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