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계열 기업의 회사채 인수는 물론 기업공개(IPO) 등에서도 이른바 '바터 거래'가 이뤄질 조짐이다.
물론 이는 '발행기업이 증권사 지분 5% 이상 보유한 경우 주관사 업무를 제한한다'는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정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국내 투자은행(IB) 성장을 위해선 규정 강화를 비롯한 사후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범(凡) 현대가'로 묶이는 HMC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 두 증권사는 알려진 바와 달리 긴밀한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은 현대가 맏형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하이투자증권은 동생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2008년 신흥증권과 CJ투자증권을 각각 인수해 설립한 증권사다.
때문에 업계에선 기존 현대증권을 포함 현대가를 모태로 한 세 개 증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반대다.
작년 하이투자증권은 현대기아차그룹이 발행한 회사채 2400억원을 인수했다. 1100억원에 그친 모회사 현대중공업 계열 회사채 인수 규모의 두 배를 웃돈다.
HMC투자증권도 지난해 총 회사채 인수금액 1조800억원 중 700억원을 현대중공업(500억원)과 현대오일뱅크(200억원) 물량으로 채웠다. 모회사인 현대기아차 계열 회사채는 4600억원으로 범 현대가로 계산하면 총 회사채 인수금액의 49.1%를 집안에서 채운 셈이다.
이는 비단 HMC-하이투자증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혈연 관계도 아닌 삼성증권과 SK증권 역시 '공생'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다.
SK증권은 지난해 삼성 계열 회사채 770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이는 SK증권이 인수한 전체 회사채 물량의 30.1%에 해당한다. SK증권이 인수한 SK계열 회사채는 6700억원(비중 26.2%)을 웃돈다.
삼성증권도 전체 인수물량의 43.8%인 1조600억원어치를 SK계열 회사채로 채웠다. 같은 기간 삼성증권이 삼성 계열 회사채를 인수한 물량도 5650억원으로 23.3%였다.
특히 이런 '밀어주기'는 회사채 주관인수를 넘어 향후 기업공개(IPO)와 퇴직연금 등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하이투자증권은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과 현대위아 IPO 참여를 위해 물밑작업에 한창이다. 또, 아직 퇴직연금사업자 선정을 하지 않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계열사와 협력업체의 퇴직연금을 HMC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 두 증권사가 나눠 가질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는 탐탁친 않지만 꼭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인연을 영업으로 연결하는 것도 능력 아니냐"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IB를 키우려면 계열사채 인수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수수료나 바터거래 등에 대한 사후 감시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주경제= 김용훈 기자 adoni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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