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스위스 제네바 도심에서 프랑스 국경 쪽으로 자동차의 속도제한을 지켜가며 15분 정도 달리자 교외 지역인 메이런에 들어섰고, 5분 정도 더 가니 CERN의 주요 연구시설과 상징건물인 더 글로브(The Globe) 등이 입주한 곳에 도착했다.
두텁게 쌓인 눈밭에 5층 이내의 나지막한 연구동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뿐 그다지 색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이 곳은 인근 식당과 주유소 등에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을 가끔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최고 두뇌들이 모이는 장소다.
이곳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2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드물지 않다.
CERN에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김재호 연구원은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현대 물리학의 교과서를 집필한 노벨상 수상자들과 구내식당에서 나란히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인으로 치면 역대 대통령들과 겸상을 하는 셈"이라며 웃었다.
김 연구원은 "무엇보다 의문나는 점이 있을 때 수시로 옆 방에서 연구 중인 석학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큰 특혜"라고 말했다.
CERN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우수한 두뇌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 12개국이 핵과 입자물리학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에 착수해 1954년에 준공한 공동연구소.
특히 1994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무려 29억 달러(약 3조3천억원)를 투입한 끝에 지난 2008년 완공된 세계 최대의 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가 137억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대폭발)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길이 27㎞에 달하는 강입자가속기 터널은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나드는 지하 100m에 묻혀있기 때문에 지상에는 전력 공급시설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시설이 거의 없다.
CERN은 본래 설립목적인 입자 물리학 연구 활동 외에 효율적인 자료 검색과 공유를 위해 오늘날 누구나 사용하는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WWW)'을 최초로 고안했고, 지난 2008년에는 전 세계 140여 개 컴퓨터센터의 정보기술(IT) 능력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컴퓨팅 그리드' 기법을 발표했다.
부수적인 성과 만으로도 인류의 삶을 바꿔놓은 새로운 발상들을 일궈낸 것이다.
현재 CERN에서 연구 중인 물리학자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80여 개국 출신 7천여 명에 달하며, 엔지니어들도 7천여 명에 이른다.
전 세계 입자물리학자의 약 50%가 연중 30% 이상을 CERN에 머물며 연구활동을 한다는 추산도 나와있다.
3개월 이내 단기 체류하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연구소 내의 기숙사 3개 동에 머무는데 지명도와 직위 등에 상관없이 평등한 숙소가 제공된다.
또 6개월 이상 장기체류자들과 가족 등 약 4만여 명이 연구소 반경 5㎞ 이내에 있는 생 제니, 프레베상, 페르니-볼테르 등에 거주한다.
우수인력 유치를 위해 CERN의 연구에 참여하려는 각국의 물리학자들에게는 비자신청 비용을 면제해주고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주고 있다. 또 외교관용 차량 번호판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각종 특혜를 주고 있다.
특히 CERN은 젊은 물리학도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각국의 유능한 인재를 초청하는데 적극적이다.
다만 건물이 낡아 중앙 컨트롤센터와 같은 중요 시설이 최근 내린 폭설에 물이 새는 등 불편한 점이 나타나고 있다.
강서곤 연구원은 "CERN에서 연구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하면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세종시에 건설하려는 중이온가속기는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CERN의 강입자가속기와는 다르지만, 의료와 생명공학, 화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응용분야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주경제=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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