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이탈을 막아라."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앞두고 기업들이 마주하게 된 지상과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가운데 상당수는 경기회복세에 동참해 새 둥지를 찾아 나설 참이다. 문제는 이들이 기업 성패를 좌우해온 핵심 인재라는 데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인재 이탈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기업이 포용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운영이사회(CEB)가 최근 유니레버와 까르푸 등 35개 유럽 기업 임직원 1만8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4명 가운데 1명이 향후 12개월 안에 직장을 옮기고 싶다고 답했다. 특히 업무능력이 동료들보다 21% 이상 뛰어난 이들의 이직 욕구가 1년 전보다 10% 더 커졌다. 또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 중 65%는 경기가 살아나면 다니고 있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문은 영국 에딘버러에 있는 대형 은행 본사에서 일했던 테스 조이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올해 41살인 조이스는 올 초 일에 흥미를 잃었다.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직장 상사가 주요 업무를 독차지하며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최근 영국 금융기업인 스탠더드라이프그룹의 PR매니저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신문은 핵심 인재가 이탈하는 우려스런 현상이 유럽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비단 유럽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업무를 맡은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경기 회복 신호와 함께 이들의 이직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크리스토퍼 엘레후스는 "핵심 인재의 이탈 가능성은 기업들에 내재된 숨은 위험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당장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직장인들이 이직을 꿈꾸는 이유는 조이스의 사례처럼 자신의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경기침체로 불어닥친 해고 칼바람은 용케 이겨냈지만 해고자들의 업무를 떠안게 되는 등 회사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갖게 된 탓도 크다.
영국 런던의 전략컨설턴트인 루아 레깃은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만큼 인재 이탈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 같다"며 "직장인들이 탈출을 꿈꾸는 것은 스스로 잉여인간이라고 느끼거나 해고당한 동료들이 회사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인재 이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포용력을 갖추라고 입을 모은다.
인력운용 전문 컨설팅업체 페나의 그레이엄 러셀 이사는 "기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핵심 인재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재를 붙잡아 두는 데 높은 연봉이 큰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지만 직장인들은 이제 강한 리더십이나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봉을 높이는 것은 인재들의 이직 시기를 잠시 늦출 뿐 기업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불만이 쌓이거나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면 떠날 사람들은 지체없이 자리를 뜨고 만다는 설명이다.
러셀은 기업이 포용력을 키우려면 기업 리더가 늘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상하간 의사소통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 내부 소통망을 활용하는 것도 열쇠가 될 수 있다.
인력채용 전문업체 로버트월터스의 크리스 히키는 기업이 임직원의 경력 향상을 위한 멘토로 나서는 것도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투자하는 게 중요하고 업무 유연성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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