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우리국회에 '특별 소양교육'이 필요하다

2009-12-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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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국회가 신음하고 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학 교수
우리국회가 병든 것이 분명하다. 여야 간에 격렬한 쟁점이 있을 때마다 예외없이 폭력과 욕설, 단상점거가 난무하고 있으니 어떻게 정상적인 국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랴. 가벼운 폭력사태가 10년에 한번 정도 일어난다면 그나마 얼음판위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김연아 선수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허구 헌날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국회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며 국민들의 짜증만 자극할 뿐이다. 그동안 미디어법, 비정규직법을 가지고 볼 쌍 사납게 여야가 부딪치더니 이번에는 전체예산의 1.7%에 불과한 4대강 예산 때문에 예결위회의장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작년 이맘때 한미 FTA비준 동의안 상정문제로 국회외교통일통상위원회에서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등을 동원한 난투극이 일어났는데 그 1년 전의 '해머국회'는 그 지점에서 한 발짝도 나아진 게 없다. 금년에도 국민들은 '극적인 타협과 반전을 혹시 오늘은 이루어낼까' 노심초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하는 것인가.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언처럼, 이 사태를 두고 여야는 각기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특히 대변인들은 상대방을 타박하는데 또 얼마나 그 유창한 말솜씨를 뽐낼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국회에서 폭력이 행사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성스러운 교회에서 폭력이 행사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스러운 민의의 전당에서 어떻게 말이 아닌 폭력의 행사가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삼척동자도 아는 이 사실을 우리의 여야 국회의원들만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하기야 그들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다만 여야의 입장이 바뀌면 폭력에 대한 입장도 바뀌는 것이 문제다. 국회폭력은 여당의 정치력 부재와도 상관이 없고 야당의 강경파득세와도 전혀 관계가 없는 '절대악(絶對惡)'의 문제다.
그럼에도 폭력을 정상적인 의정활동의 한 양태로 보고 있거나 '필요악' 정도로 생각하는  '외계인 국회'라면 조그만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법의 엄한 처벌을 받는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여야 간에 의견이 다를 때마다 이처럼 몸으로 싸우면 외나무다리에서 먼저 건너가겠다고 몸싸움을 하다가 둘 다 물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염소와 무엇이 다른가. 여야의 정략적 사고 앞에 상식과 순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상식과 순리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국회에서의 폭력방지와 관련하여 수많은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정능력이 없는 국회를 보고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다'면서 많은 고언과 제도개선책들이 개혁의 차원에서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등장한 것이다. '불량상품' 리콜하듯 '불량국회의원'을 소환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Filibuster)제도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가하면, 정당의 강제당론으로부터 의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개혁도 상식과 순리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 쟁점법안만 생기면 국회의원 수십 명이 한데 엉켜 몸싸움을 하고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상대방에게 퍼붓는 것은 법이 없고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수결 원칙이나 소수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지 않아 '폭력국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상식과 순리를 수용하는 교양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왜 이들이 다수가 되지 못하고 소수로 남아있는가. 상식과 순리가 다수의 규범으로 자리잡는데 걸림돌이 되는 관행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우선 폭력이나 완력을 행사한 국회의원들이 언론에서는 나쁜 국회의원으로 비판을 받지만 당 내부에서는 당을 위해 몸을 던지며 '악역(惡役)'도 마다하지 않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또한 이들이 나중에 사석에서 늘어놓는 무용담은 너무나 화려하여 좌중을 압도한다. 폭력행사에 대한 수치심은 없고 오히려 '몸으로 맞서보니 누구는 별거 아니더라'라는 식으로 당당하다. 반대로 몸으로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겁쟁이로 지목된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직이 ‘철밥통’이라는 관행도 문제다. 국회의원선거법은 추상같아서 선거법을 조금이라도 위반한 국회의원은 금배지를 잃는 판인데, 일단 국회 안에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폭력도, 욕설도 다 면책이다. 세종시법이나 미디어법통과에 항의해서 사표를 낸 국회의원은 있으나 국회에서의 폭력 때문에 스스로 사표를 낸 국회의원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식과 순리가 있다한들 통용될 수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근육질의 논리가 상식과 순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회여! 국회여! 국회여!

옛말에 자식이 웬수라고 했던가. 자식이 아무리 망나니짓을 해도 자식은 인륜이라 절연할 수도 호적에서 파낼 수도 없다. 지금 국회가 그 꼴이다. 명색이 법을 만드는 국회니 폭력을 행사한다고 하여 없앨 수도 없고 또 가끔씩 외국의 지도자들이 와서 한국의 의회민주주의가 어떤가하며 한번씩 보고 가니 보여주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이도저도 못하니 국회는 '웬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도 없이 추락하는 국회를 보고 국민들이 손을 놓을 수는 없고 그 폭력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무슨 방안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각종 제도개혁이 연목구어(緣木求魚)식의 해법에 불과하여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뾰족한 대안이 있을 것인가.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볼만 하다. 그것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폭력추방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게 함으로 의식개혁에 나서는 방안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회기가 열리기전에 반드시 2박3일씩 집단연수를 통하여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에 대한 소양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덕망있고 식견있는 강사를 초빙하여 완고한 국회의원들의 폭력성을 바꾸어 놓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의보다 폭력추방에 대한 집중적인 소양교육이 필요한 곳이 바로 우리국회가 아닌가.

 

* 이 칼럼은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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